연극이 정치보다 강한 이유가 있네
‘우리의 연극은 과장과 가식을 벗고 연극 고유의 원형적 생명력을 되살린다.’

국립극단이 추구하는 연극의 지향점을 명시한 다섯가지 선언 중 하나다.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아버지를 찾아서’를 보면서 이 선언문이 떠올랐다. 상연 내내 극장을 가득 채운 무대 에너지와 극적 재미가 그동안 ‘국립극단 연극 선언’을 접할 때마다 실체가 궁금했던 ‘연극 고유의 원형적 생명력’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아버지를 찾아서’의 원작은 국내서 보기 드문 이라크 동시대 연극이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몇 해 전 도쿄에서 열린 연극페스티벌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두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악사가 펼치는 단출한 무대에 이 감독은 “아, 아직 연극이 저런 모습으로 살아 있구나”하고 감탄했다. ‘연극의 본질이자 원형질’을 봤다고 했다. 이 감독은 원작 대본을 찾아 번역을 맡기고, 직접 공연 대본을 구성했다. 연출은 연희단거리패 ‘배우장’인 이승헌이 맡고, 극단의 재주꾼인 배보람, 윤정섭 배우가 호흡을 맞췄다.

공연은 ‘길거리 연극’처럼 진행된다. 시작부터 일반 연극과는 다르다. 아랍 전통 복장을 한 두 배우가 극장 입구에서 관객을 맞고 객석으로 안내한다. 두 배우는 호루라기와 하모니카를 불면서 흥겹게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관객의 눈길을 모은다.

이라크 어느 도시의 거리가 배경이다. 두 배우는 소형 트럭을 세워 놓고 치매에 걸린 70대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한 남매의 이야기를 ‘한 푼짜리 오페라’ 형식으로 보여주겠다고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를 차용한다. 두 배우는 트럭에 있는 소품들을 이용해 극에 등장하는 9명의 인물들을 모두 소화하며 극을 만들어간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남매의 여정에서 눈멀고 사지가 마비된 노인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거래하는 참혹하고 비정한 현실, 전쟁과 탐욕이 만든 비인간적인 사회와 부패한 권력 구조가 신랄하게 드러난다.두 배우의 광대짓과 드라마에 날선 풍자와 뒤틀린 비꼼이 팔딱팔딱거린다. 터져나오는 웃음 속에 찡한 감동이 솟아오른다.

일본 연출가 노다 히데키는 “연극은 정치보다 오래 됐고 더 강하다”고 말했다. 전쟁의 포화가 끊이지 않는 이라크에도 원형적 생명력이 가득한 ‘강한 연극’이 살아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오는 7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

송태형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