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委 후원금 기부자 세계 1위…'모범사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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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20주년 맞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오종남 사무총장
금액도 상반기 5456만弗로 4위
통계청장 마치고 무보수 봉사
'품격 기부' 위해 거리 모금 중단
금액도 상반기 5456만弗로 4위
통계청장 마치고 무보수 봉사
'품격 기부' 위해 거리 모금 중단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1994년 1월1일 출범 이후 20주년을 맞았다. 유엔 산하기구였던 주한유니세프대표부 철수와 동시에 민간기구(NPO)로 탈바꿈한 지 20년이 된 것이다. 유니세프본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위원회의 기부자 수는 36만6000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액수로는 5456만달러로 4위다. 1994년 설립 첫해 351만달러에서 2005년 1000만달러, 2009년 2000만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36개 유니세프국가위원회로부터 ‘모범국가’로 지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룬 성과다.
오종남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61·사진)은 1일 “지독하게 가난해 1949년부터 수혜를 받던 나라에서 공여국이 돼 이룬 감격스러운 일”이라며 “국내 기부문화는 결코 인색하지 않다.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기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들어선 오 총장은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에서 주로 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정책·건설교통·산업통신과학·재정경제 네 분야 비서관을 지내는 진기록을 세웠고 이후 통계청장도 맡았다. 2009년 4월부터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이사를 지내다 지난해 전임 사무총장이 갑작스럽게 중도하차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무총장직을 맡게 됐다. 그는 “공직생활을 떠나 이제는 뭔가 그저 봉사할, 좋은 일을 할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 총장은 무보수로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현재 유일한 수입원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료다.
오 총장은 부임 후 ‘유니세프 20/20’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출범 20년을 맞아 향후 20년 사업을 준비하자는 의미에서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직원들이 너무 바빠져 직원들에게 참 죄를 지었다”고 웃었다. 이른바 ‘품격 있는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길거리에서 진행하는 모금행사도 전면 중단시켰다.
위원회 모금액 가운데 4분의 3은 국제구호활동에 쓰이고, 나머지는 국내 아동 지원활동에 쓰인다. 그는 체계적인 국내 사업을 위해 올 1월부터 ‘아동권리본부’를 신설했다. 그는 아동복지를 생존·보호·발달 세 단계로 나누고, 앞으로는 보호와 발달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능력이 안 되면 낳지를 말아야 하는데, 출산만 해 놓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스트레스를 아동에게 풀면서 학대하는 가정이 은근히 많습니다. 대부분 친부모가 그래요.” 그는 오는 9월29일 시행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에 맞춰 관련 예산 및 인프라 확보 등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총장은 스크랜턴(이화학당 창업자, 한국 최초 감리교 여선교사)여성리더십센터장도 맡아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매년 20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2004년 11월부터 2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지내면서 미국 감리교 세계선교본부가 추진한 사옥 매각에 관여한 게 계기가 됐다. 이 역시 얼떨결에 맡았다는 오 총장은 “(여성 리더를 키우며) 굉장히 재밌게 일하고 있다. 물론 한 푼도 안 받고”라며 웃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오종남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61·사진)은 1일 “지독하게 가난해 1949년부터 수혜를 받던 나라에서 공여국이 돼 이룬 감격스러운 일”이라며 “국내 기부문화는 결코 인색하지 않다.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기부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들어선 오 총장은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에서 주로 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정책·건설교통·산업통신과학·재정경제 네 분야 비서관을 지내는 진기록을 세웠고 이후 통계청장도 맡았다. 2009년 4월부터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이사를 지내다 지난해 전임 사무총장이 갑작스럽게 중도하차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무총장직을 맡게 됐다. 그는 “공직생활을 떠나 이제는 뭔가 그저 봉사할, 좋은 일을 할 나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 총장은 무보수로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의 현재 유일한 수입원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료다.
오 총장은 부임 후 ‘유니세프 20/20’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출범 20년을 맞아 향후 20년 사업을 준비하자는 의미에서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직원들이 너무 바빠져 직원들에게 참 죄를 지었다”고 웃었다. 이른바 ‘품격 있는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길거리에서 진행하는 모금행사도 전면 중단시켰다.
위원회 모금액 가운데 4분의 3은 국제구호활동에 쓰이고, 나머지는 국내 아동 지원활동에 쓰인다. 그는 체계적인 국내 사업을 위해 올 1월부터 ‘아동권리본부’를 신설했다. 그는 아동복지를 생존·보호·발달 세 단계로 나누고, 앞으로는 보호와 발달에 역점을 둬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능력이 안 되면 낳지를 말아야 하는데, 출산만 해 놓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면 스트레스를 아동에게 풀면서 학대하는 가정이 은근히 많습니다. 대부분 친부모가 그래요.” 그는 오는 9월29일 시행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시행에 맞춰 관련 예산 및 인프라 확보 등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총장은 스크랜턴(이화학당 창업자, 한국 최초 감리교 여선교사)여성리더십센터장도 맡아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매년 20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2004년 11월부터 2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를 지내면서 미국 감리교 세계선교본부가 추진한 사옥 매각에 관여한 게 계기가 됐다. 이 역시 얼떨결에 맡았다는 오 총장은 “(여성 리더를 키우며) 굉장히 재밌게 일하고 있다. 물론 한 푼도 안 받고”라며 웃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