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헷갈리는 청소기 흡입력 기준
“참 좋은데…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건강보조식품 광고의 한 장면이 아니다. 청소기 업체들의 항변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로봇 청소기, 무선 진공청소기 등 신제품을 잇따라 내놨다. 성능에 대해 이런저런 홍보를 하고 있지만 정작 청소기의 본질적 능력인 흡입력(먼지 등 오염물질을 빨아들이는 능력)은 애매하게만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출시한 로봇 청소기 ‘파워봇’은 “기존 로봇 청소기보다 모터 성능이 60배 좋다”고 한다. 이게 정확히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알 방법이 없다.

업체들이 흡입력을 고의로 숨기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흡입력에 대한 표준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청소기의 성능에 대해 판매업체가 소비자에게 필수적으로 알려줘야 하는 항목은 ‘소비전력(W)’이다. 전기를 얼마나 사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소비전력이 높으면 모터의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각 사의 절전 기술이나 모터의 효율성에 따라 흡입력이 비슷해도 소비전력은 크게 차이 나는 경우도 많다.

일부 업체는 모터의 출력 기준인 에어와트(AW)를 표시하기도 한다. 소비전력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정확한 기준이긴 하지만, 필수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표시하는 업체는 드물다. 모터의 출력이 흡입력과 정확히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LG전자 무선 진공 청소기 모터의 출력은 200AW 전후인데, 한 수입 가전업체 제품의 출력은 1200AW에 달한다. 그렇다고 수입업체 제품의 흡입력이 LG의 6배인 것은 아니다. 모터의 성능이 같더라도 그걸 어떻게 청소기로 만드느냐에 따라 흡입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청소기 등에 대한 분명한 품질 기준이 없다. 담당 기관은 기술표준원이지만 청소기 흡입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표준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최근 로봇 청소기 분야에서만 삼성, LG 등 몇몇 업체가 모여 국제 표준을 자체적으로 만들기로 했을 뿐이다.

청소기 종류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데 분명한 흡입력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점점 헷갈릴 수밖에 없다. 제품의 빠른 진화를 신속한 표준 제정으로 뒷받침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남윤선 산업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