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복무때 창업구상 '인생 전환점'
대출이자 부담…사기도 당했지만
제품 팔리자 중압감이 희열로
중앙대 기계공학부 4학년 김기수 씨(23·사진)는 지난달 25일 학교를 방문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 자신이 개발한 스마트폰 연동 저주파 자극기 ‘티클(T-clinic)’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황 장관이 “어깨보다 골치가 아픈 게 더 문제”라고 하자 김씨는 “주의사항을 잘 보시면 머리에 쓰지 말라고 돼 있다”고 답했다. 이날 ‘창업사례’ 발표자로 나선 김씨의 말에 황 장관은 연신 껄껄 웃었다.
김씨를 2일 중앙대 교정에서 만났다. 그는 “막상 창업을 해보니 엄청난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겼지만 성취감도 그에 못지않다”며 “취업을 유일한 길로 여기는 또래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개발한 저주파 자극기 티클은 7월 말 처음으로 1000개가 생산돼 판매되고 있다.
김씨의 창업정신은 어린시절부터 찾아온 ‘고난’에서 싹텄다. “온갖 일을 하면서 창업으로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997년부터 집안의 생계를 챙겨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뇌하수체 종양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거리에서 냉커피를 팔고, 인터넷 쇼핑몰도 운영했어요. 해수욕장에서 폭죽을 팔다가 건달들에게 다 빼앗기고 쫓겨난 적도 있었죠.”
돈을 벌어야 했기에 공부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고3 때 성적을 끌어올려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중앙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유복하게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겪으며 한동안 방안에 웅크려 있었다”고 했다.
김씨에겐 군 복무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군 복무 기간에 틈틈이 창업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두꺼운 공책은 창업 구상으로 빽빽하게 채워졌다.
2012년 복학한 뒤 바로 창업에 나섰다. 중앙대 창업경진대회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배달해주는 앱인 ‘터치미’를 개발해 상금 6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씨는 2013년 중소기업청 창업지원사업에 응모했다. 아이템은 저주파 자극기였다. 평소 목디스크를 앓던 그는 저주파 자극기를 스마트폰으로 조작할 수 있다면 3만원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고가제품(30만~40만원대)과 비교해 기능이 손색 없을 것 같았어요. 스마트폰으로 무한대의 자극 패턴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요.”
중기청에서 7000만원의 지원을 받았지만 1억원이 넘는 개발비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저녁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야간에 택배 상자를 내리고 싣는 아르바이트를 10개월간 계속했다. 방학 땐 울산에 내려가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 “한 협력업체에 일을 맡겼는데 1500만원을 갖고 잠적했어요. 며칠간 수소문 끝에 잡았는데 ‘앞으로 사업할 놈이면 이 정도로 사람한테 데였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마주칠 세상에 비하면 이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뭡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했던 얘기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처음으로 제품을 생산해 법인 등에 납품하고 있다.
청년창업의 어려움에 대해 김씨는 “관련 업체가 ‘단가 후려치기’ 등 농간을 부리지 못하도록 학교나 정부기관이 3자 계약 형태로 참여해 리스크를 분담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씨는 앞으로 스마트폰 관련 분야를 더 파고들 생각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