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 이해 없다면 '가십'일 뿐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
뉴스의 사전적 의미는 ‘새 소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또는 보도·기사’다. 중요한 것은 새로움이지만 새롭기만 하다고 뉴스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동의하는 뉴스는 새롭고, 또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소식이다. 문제는 중요성의 판단이다. 어떤 소식이 중요한 소식일까. 신문 1면이나 TV에 편성된 뉴스가 전부였던 시절, 뉴스는 희소해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이 보편화됨에 따라 뉴스는 ‘실검(실시간 검색)’이라는 신조어로 대체됐다. 새로움이 중요함의 전부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매시간 변하는 실검을 보면 ‘과연 뉴스라고 할 만한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실검 1위에 오르는 인기 기사는 성, 폭력, 스캔들에 관한 기사들이다. 만약 이런 선정적 사건이 없을 때는 어떤가. 대부분 현재 시간 방영 중인 예능프로그램 혹은 출연자 이름이 상위에 놓여 있다. 뉴스가 종교라는 보통의 평가가 과분한 수준이다.
톨스토이의 걸작 ‘안나 카레니나’도 사실 신문기사 한 줄에서 시작됐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도 뉴스를 꼼꼼히 본다고 한다. 사실 뉴스나 예술작품이나 다루는 사건은 비슷하다. 부러울 것 없는 고위직 한 남자가 며느리와 정사를 나누다 인생의 파국을 맞고(데미지), 멀쩡한 직업을 가진 준수한 남자가 섹스중독에 시달리기도 한다(셰임). 줄거리만 보면 영화 속 일들은 뉴스보다 선정적이다. 하지만 뉴스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인생의 어두운 진실들을 비로소 만난다.
뉴스를 단순히 소비하면 가십에 불과하지만, 생각하고 내면화하면 인문학적 자원이 된다. 인간이 지닌 가장 부끄러운 항목들은 뉴스, 실검에 모두 있을 것이다. 사건의 재구성만을 염두에 둔 기사들은 폐쇄회로TV(CCTV)의 녹화물을 훔쳐보고자 하는 관음증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뉴스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그 비루함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때이다. 소비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소식, 그것이 제대로 된 뉴스다. 인문학이란 우리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사유, 거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