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부총리 '경제 살리기' 의지…환경부 - 산업계 절충 이끌어내
2일 정부가 발표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결과적으로 환경과 산업의 절충으로 마무리됐다. 환경부는 ‘2015년 시행’을, 경제계는 ‘초기 부담 최소화’의 실리를 각각 챙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련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간 힘겨루기로 시행 시기와 방식 등에 대한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 활성화’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정하면서 이날 발표한 내용대로 가닥이 잡혔다는 후문이다.

◆시장가격 t당 1만원으로 통제

정부가 시장 가격을 통제하기로 한 것은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산업계는 1차 계획 기간(2015~2017년) 동안 배출해야 할 온실가스 양이 정부 할당량보다 2억7000만t 더 많다고 주장해왔다. 과징금 상한선인 t당 10만원을 적용하면 3년간 산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최대 27조원에 이른다는 것.

하지만 시장 안정화 조치 목표가격을 t당 1만원으로 설정하면 부담 금액이 최대 2조7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정부 측은 설명한다. 정부는 특히 목표가격 1만원 선을 지키기 위해 시장 가격이 오를 기미가 보이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예비 할당량을 시장에 풀어 공급을 안정시키기로 했다. 예비분이 모자라면 2차(2018~2020년) 계획 기간의 예비분까지 끌어다 초과 수요를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또 2017년까지 초과 배출할 때는 그 다음해 배출량에서 차입하거나, 반대로 남은 배출량은 그 다음해로 넘겨 사용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2015년에 할당량보다 200만t을 초과 배출했다면 배출권을 사거나 과징금을 무는 대신 2016년 할당량을 끌어다 미리 사용할 수 있다.

◆BAU도 재검토

정부는 업계가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기준도 재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2009년 당시 산정한 연도별 BAU를 기준으로 업종별 할당량을 정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 배출량과 차이가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당시엔 2010년 6억4400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배출량은 이보다 5.8% 많은 6억6900만t이었다. 2012년 실제 배출량 역시 7억190만t으로 BAU(6억7400만t)보다 4.1% 많았다. BAU를 높게 잡으면 그만큼 기업 할당량도 많아지고 반대의 경우 기업 비용 부담이 커지게 돼 있다.

정부는 일단 내년부터 제도를 시행하되 BAU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BAU가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측 전언이다.

◆최경환 의지 관철

2010년 배출권 거래제 시행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뒤 산업부와 환경부는 제도 시행 시기와 세부 방안을 놓고 끊임없이 충돌해왔다. 산업부는 줄곧 업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너무 많다며 제도 시행 유예를 주장한 반면 환경부는 “이미 국제사회에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BAU 대비 30% 줄이겠다고 약속한 만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양 부처의 협상은 최 부총리가 취임하면서 확 바뀌었다.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장관 시절부터 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반대하던 최 부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배출권 거래제 입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환경부를 압박했다. 투자·고용 확대를 위해서는 산업계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기업 부담을 늘리는 환경 규제를 무리한 방식으로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최 부총리의 의지가 환경부의 고집을 꺾은 셈이다.

■ 온실가스 배출량 거래제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업체들에 매년 배출할 수 있는 할당량을 부여해 남거나 부족한 배출량은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해 할당량이 남은 A기업은 초과 배출한 B기업에 배출권을 팔 수 있다.

■ 시장안정화 조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급등할 때 정부가 예비로 비축해 놓은 배출권 물량을 풀어 시장가격을 낮추는 제도. 시장가격이 정부의 목표가격을 웃돌면 발동된다.

■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BAU)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 총량을 추정한 것. 정부는 2009년에 산출한 BAU를 기준으로 연도별 배출권 할당량을 정했지만 산업계는 정부 전망치가 부정확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세종=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