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낮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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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낮의 꼭대기에 올라가 붉고 뜨겁게/ 취해서 나부끼는 그대의 얼굴은/ 오오 내 가슴을 메어지게 했고/ 내 골수의 모든 마디들을 시큰하게 했다/ 낮술로 붉어진/ 아, 새로 칠한 뼁끼처럼 빛나는 얼굴,/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
정현종 시 ‘낮술’의 구절처럼 낮에 마시는 술은 빨리 취한다. 심리적 반응도 민감해진다. 보들레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쉬지 말고 취하라’면서 시와 도덕으로 취하는 것은 ‘하얀 마법’이고, 술이나 마약으로 취하는 것은 ‘검은 마법’이라고 했다. 하얀 마법은 환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지만, 검은 마법은 자아를 파괴함으로써 환각의 지속성까지 깨뜨린다는 논리였다.
낮술은 유혹도 그만큼 커서 ‘시커먼 마법’이라 부를 만하다. 낮술에는 일종의 금지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다. 박상천 시인이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의미 없는 금지선 앞에 서서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그대’에게 낮술을 권할 때도 그렇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대여섯살 때부터 독에 기어올라 술을 훔친 변영로와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오가며 막걸리 50여사발을 마신 박종화는 어떤가. 유독 고량주를 즐기며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눈물을 쏟던 박용래, 죽기 전 20여일 동안 소주 100병 이상을 마시며 300여편의 시를 쓰고 간 박정만은 또 어떻고. 헤밍웨이는 점심 때 포도주를 5~6병이나 마셨고, 고흐는 그 독한 압생트에 취해서야 붓을 잡았다.
송나라 문인 노대경이 ‘오주 석 잔이면 만사가 충분하다’고 했는데, 정오 안팎의 오(午)시에 마시는 오주(午酒)가 곧 점심술, 낮술이다. 낮술은 밤술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취흥이 돋으면 새벽까지 간다. 술이 사람을 마신 사례는 많고도 많다. 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더욱 그렇다. 어느 군사령관은 만취추태로 옷을 벗었다. 한때 낮술을 호령하던 여당 대표는 낮술금지령을 내렸다.
예부터 ‘낮술은 부모도 몰라본다’고 했으니 경계해야 한다. 업무 효율성이나 판단력, 반사신경도 무뎌진다. 주신(酒神) 바커스가 군신(軍神) 마르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영국 속담도 있다. 그나저나 ‘새로 칠한 뼁끼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이제는 어디서 볼 수 있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정현종 시 ‘낮술’의 구절처럼 낮에 마시는 술은 빨리 취한다. 심리적 반응도 민감해진다. 보들레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쉬지 말고 취하라’면서 시와 도덕으로 취하는 것은 ‘하얀 마법’이고, 술이나 마약으로 취하는 것은 ‘검은 마법’이라고 했다. 하얀 마법은 환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지만, 검은 마법은 자아를 파괴함으로써 환각의 지속성까지 깨뜨린다는 논리였다.
낮술은 유혹도 그만큼 커서 ‘시커먼 마법’이라 부를 만하다. 낮술에는 일종의 금지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다. 박상천 시인이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의미 없는 금지선 앞에 서서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그대’에게 낮술을 권할 때도 그렇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대여섯살 때부터 독에 기어올라 술을 훔친 변영로와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오가며 막걸리 50여사발을 마신 박종화는 어떤가. 유독 고량주를 즐기며 한 모금 들이켤 때마다 눈물을 쏟던 박용래, 죽기 전 20여일 동안 소주 100병 이상을 마시며 300여편의 시를 쓰고 간 박정만은 또 어떻고. 헤밍웨이는 점심 때 포도주를 5~6병이나 마셨고, 고흐는 그 독한 압생트에 취해서야 붓을 잡았다.
송나라 문인 노대경이 ‘오주 석 잔이면 만사가 충분하다’고 했는데, 정오 안팎의 오(午)시에 마시는 오주(午酒)가 곧 점심술, 낮술이다. 낮술은 밤술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취흥이 돋으면 새벽까지 간다. 술이 사람을 마신 사례는 많고도 많다. 시국이 어수선할 때는 더욱 그렇다. 어느 군사령관은 만취추태로 옷을 벗었다. 한때 낮술을 호령하던 여당 대표는 낮술금지령을 내렸다.
예부터 ‘낮술은 부모도 몰라본다’고 했으니 경계해야 한다. 업무 효율성이나 판단력, 반사신경도 무뎌진다. 주신(酒神) 바커스가 군신(軍神) 마르스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영국 속담도 있다. 그나저나 ‘새로 칠한 뼁끼처럼 빛나는 얼굴’들을 이제는 어디서 볼 수 있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