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사 협상 때마다 봉쇄·농성, 그 뒤엔 강성 현장조직이…파업보다 무서운 현대차 '勞-勞 갈등'
“노사협상을 집행부 선점을 위한 정치도구로 활용하고 있으니 배부른 귀족노조란 비판을 듣는 것 아닙니까?”

3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만난 50대 조합원 박모씨는 “노조 측 교섭위원으로 참여한 사업부 대표들이 추석 전 협상 타결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집행부 성과물을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일 오전부터 정회와 휴회를 거듭하며 12시간 이상 이어진 현대차 노사의 마라톤 협상에서 현장조직을 대변하는 노조 측 사업부 대표들이 보여준 행태는 비난받는 정치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이경훈 노조위원장은 이날 오후 8시간에 걸친 노사 간 실무협의를 끝으로 쟁점인 통상임금에 대한 사측의 최종 제시안을 받아들고 교섭위원들과 최종 검토에 들어갔다. 시간은 벌써 오후 10시. 두 시간만 지나면 추석 전 임협 타결은 물건너가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을 수 없다던 회사가 협상 막바지에 ‘내년 3월 말까지 통상임금 적용시점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시, 꽉 막힌 협상에 물꼬를 텄다. 이 위원장은 통상임금과 관련한 입장 정리 후 곧바로 임금 부문에 대한 회사 측 제시안을 받아 결단을 내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협상장 밖엔 현장조직 대의원 200여명이 몰려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 소식에 협상은 물거품이 됐다. 이 위원장은 사업부 대표들이 휴대폰을 통해 자신의 소속 대의원들을 협상장 앞으로 불러모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 협상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금속노조 자유게시판에는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집행부 장악에만 눈이 먼 현장조직들은 현장에서 사라져라” 등 추석 전 임협 타결을 무산시킨 현장조직들을 성토하는 글들로 도배됐다.

현대차 노조 내에는 서로 다른 성향의 10여개 현장조직이 있다. 이 가운데 현 집행부가 속한 중도 실리노선의 현장노동자를 제외하면 금속연대 금속민투위 민주현장 등은 최강성으로 분류된다. 이들 조직은 해마다 노사협상 때마다 선명성 경쟁을 벌인다. 심지어 집행부 성과를 깎아내리기 위해 협상장 봉쇄까지 하며 조직의 세 불리기에 나선다.

이 위원장은 2009년부터 3년간 무분규를 실현하고 지난해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면서 강성 조직들의 견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져 향후 노노갈등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최대 현안이다. 노동전문가들은 현대차 노사협상이 장기화로 치달을 경우 현대중공업 노조와 연대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무분규를 실천한 지 19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연휴 이후 본격적인 파업 수순을 밟기로 해 자칫 울산발 노사갈등이 전 산업계의 추투(秋鬪)로 확전되는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은 “노사협상 장기화로 협력 중소업체들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장에서] 노사 협상 때마다 봉쇄·농성, 그 뒤엔 강성 현장조직이…파업보다 무서운 현대차 '勞-勞 갈등'
현대차는 임금 부문과 관련, 기본급 9만1000원 인상, 성과급 300%+500만원, 목표 달성 격려금 120%, 사업목표 달성 장려금 300만원 등을 노조 측에 제시했다. 60세로 정년 연장도 포함시켰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에도 불구, 파격적인 안을 내놨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노조 강경파에 의해 협상은 중단됐다. 주변에선 “노노갈등이 파업보다 무섭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울산=하인식 지식사회부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