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문제가 생기면…그대로 멈춰라, 그리고 생각하라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뿌리 뽑았다. 생산라인에서 누구라도 ‘안돈(종이등) 로프’란 줄을 당기면 경보음이 울리고 머리 위에서 전구가 번쩍거렸다. 모든 직원이 달려들어 근본 원인을 찾았다.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않고는 다시 공장을 가동하지 않았다.

도요타가 세계 1위가 되기 위해 마구 치달리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현장에서 올라오는 경고가 무시됐다. 불만 끌 뿐 그 불이 왜 일어났는지 묻지 않았다. 2010년 1000만대가 넘는 차량의 리콜사태가 벌어진 배경이다. 회사는 수십억달러를 잃었고,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미국 의회에 나가 “우리는 인력과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속도보다 빠른 성장을 추구했다”고 인정했다.

슬로씽킹은 현대사회 각 분야의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12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영국의 언론인이자 세계적인 지식강연회 테드의 인기 강사인 저자는 정치·교육·인간관계·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일어났던 절박한 문제와 그것을 본질적인 방식으로 해결한 사례를 통해 ‘슬로씽킹’을 주장한다. 슬로씽킹이란 부정적 의미의 임시변통식 해결책을 뜻하는 퀵픽스(quick fix)와 반대되는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롭고 더 나은 방식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미국 페덱스의 택배기사가 컴퓨터 모니터가 든 박스를 180㎝ 높이의 담장 너머로 던지는 모습을 한 고객이 찍었다.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자 페덱스의 주문 물량이 아예 끊길 정도로 추락했다. 페덱스는 발뺌하는 대신 즉시 사과했다. 미국 담당 부사장은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몹시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고객에게 새 모니터를 제공했다. 기업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자 고객들은 화를 누그러뜨렸다.

미국, 영국, 독일에서는 수형자의 절반 이상이 출소 3년 안에 다시 체포되는 반면 노르웨이에서는 그 비율이 20%에 그친다. 노르웨이의 교정시설은 재소자들을 사회에 복귀시킨다는 장기목표에 초점을 맞춰 운영된다. 노르웨이 할덴 교도소는 수감자가 바깥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한다. 할덴에서는 재소자들이 1주일에 30분까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와 전화할 수 있고, 개인 면회실에서 가족과 어울려 지낼 수 있다.

책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실렸다. 실수를 공개하면 비난 대신 포상하는 문화를 통해 안전 시스템을 구축한 영국 공군, 민주주의를 재부팅하기 위해 크라우드소싱을 이용한 아이슬란드,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을 이용해 환자 가족들이 장기를 기증하도록 설득한 스페인의 의사 후안 카를로스 로블레 등은 모두 ‘슬로씽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다.

저자는 “슬로씽킹이 항상 똑똑한 투자”라며 “조급한 생활 속에서 아주 커 보이는 사소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는 대신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후세에 어떤 세상을 남기고 싶은가’ 같은 진정한 큰 문제에 맞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구가 100억까지 인구를 버텨내려면 살고 일하고 소비하는 방법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