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는 미개한 인종을 위해 짊어진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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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학 강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지음 / 푸른숲 / 456쪽 / 2만3000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지음 / 푸른숲 / 456쪽 / 2만3000원
1899년 영국 시인 키플링은 ‘백인의 책무(The White Man’s Burden)’라는 시에서 미국이 야만적이고 미개한 필리핀을 문명화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그 나라를 지배한다고 했다. 서구의 식민지 지배를 미개한 인종을 지원하려는 서구인의 의무감 표출로 여기면서 그런 의식을 ‘짐(burden)’이라고 표현했다. 서구의 우월의식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의식이 깔린 시였다.
윌리엄 이스털리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6년 같은 제목의 책 The White Man’s Burden에서 서구인의 원조가 우월감과 제국주의 의식에서 비롯됐음을 꼬집었다. 국내에서는 세계의 절반 구하기로 번역된 이 책에서 그는 개발도상국의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문제나 수요를 파악하지 않고 선진국의 시각으로 계획한 하향식의 일률적 원조사업만 펼쳐 원조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의 원조행태를 비판했다. ‘개발’에 대한 생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개발학 강의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개발학’을 소개하는 개론서다. 책을 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구팀은 개발학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개발’과 ‘개발도상국’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개발학을 이해하려면 개발의 개념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개발학의 원류는 17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인들이 식민지를 문명화하고 그들에게 서구식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유전자를 이식하는 것을 ‘개발’로 인식하면서 발달한 식민지학이 지금의 개발학으로 진화, 발전해왔다고 책은 설명한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개발은 식물이나 인간이 자연적으로 발전한다는 개선 또는 진보의 개념으로 쓰였다. 17세기 유럽에 중상주의가 발전하면서 개발은 국부 증진으로 받아들여졌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개발은 산업화, 공업화의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자연적인 성장보다 ‘인간의 노력이 담긴 발전’이라는 의미로 변화했다. 여기서 개발의 개념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북반구에선 개발이 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사회발전과 복지의 개념으로 진화했다. 반면 남반구에선 서구 열강이 식민지의 자원 수탈을 위해 자연환경 개척과 식민지 주변의 문명화라는 개념으로 연결지었다.
식민지 시대의 식민지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개발학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1950~1960년대 미국이 러시아 등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동맹국을 포섭하기 위해 유럽에 마셜플랜 같은 대규모 원조를 한 게 국제개발협력 또는 원조의 효시다.
책은 개발경제학이 주류를 이룬 1960~1970년대 국제 정치경제의 변화와 개발학의 상호작용을 비롯해 지난 반세기 동안 개발학의 변화 과정을 상세하게 언급한다. 1960년대 말 종속이론의 등장과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1970년대 정부가 국가 경제개발을 주도해야 한다는 신중상주의의 대두, 여성·젠더·환경 이슈의 등장,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등으로 개발학의 주류는 변화를 거듭했다.
특히 1990년대에 와서 아마르티아 센이 자유로서의 발전을 통해 개발을 ‘빈곤 등 자유에 대한 걸림돌을 줄이는 활동’이라고 설명하면서 개발은 경제적 개념을 넘어 ‘인간개발’로 확장됐다. 최근에는 경제의 중심이 동양으로 이동하고 브릭스(BRICS) 등 신흥경제국이 등장하면서 개발학에도 동양 및 신흥국의 경험을 반영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고, 개도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발학의 범주는 방대하다. 정치·외교는 물론 경제학과 국제무역 이론, 지역학, 인류학, 국제분쟁, 이주 등 방대하고 다양한 요인이 개발학의 연구 대상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원조비판론과 원조옹호론이다. 국제 원조는 이를 제공하는 공여국의 국제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라는 시각, 국제협력 체계 안에서 충분한 원조를 제공해야 효과를 발휘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관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책을 쓴 연구팀은 “최근의 개발협력 동향은 원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원조 및 개발협력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원조의 역할이 변화할 것이므로 이를 재조명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조를 제공하는 과정뿐 아니라 원조를 받아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개도국 정부의 환경, 시스템, 조직, 개인의 역량도 함께 개발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는 설명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윌리엄 이스털리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6년 같은 제목의 책 The White Man’s Burden에서 서구인의 원조가 우월감과 제국주의 의식에서 비롯됐음을 꼬집었다. 국내에서는 세계의 절반 구하기로 번역된 이 책에서 그는 개발도상국의 다양한 문화적·사회적 문제나 수요를 파악하지 않고 선진국의 시각으로 계획한 하향식의 일률적 원조사업만 펼쳐 원조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의 원조행태를 비판했다. ‘개발’에 대한 생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개발학 강의는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개발학’을 소개하는 개론서다. 책을 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연구팀은 개발학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을 ‘개발’과 ‘개발도상국’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개발학을 이해하려면 개발의 개념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개발학의 원류는 17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인들이 식민지를 문명화하고 그들에게 서구식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유전자를 이식하는 것을 ‘개발’로 인식하면서 발달한 식민지학이 지금의 개발학으로 진화, 발전해왔다고 책은 설명한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개발은 식물이나 인간이 자연적으로 발전한다는 개선 또는 진보의 개념으로 쓰였다. 17세기 유럽에 중상주의가 발전하면서 개발은 국부 증진으로 받아들여졌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개발은 산업화, 공업화의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자연적인 성장보다 ‘인간의 노력이 담긴 발전’이라는 의미로 변화했다. 여기서 개발의 개념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북반구에선 개발이 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 등 자본주의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사회발전과 복지의 개념으로 진화했다. 반면 남반구에선 서구 열강이 식민지의 자원 수탈을 위해 자연환경 개척과 식민지 주변의 문명화라는 개념으로 연결지었다.
식민지 시대의 식민지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개발학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1950~1960년대 미국이 러시아 등 공산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동맹국을 포섭하기 위해 유럽에 마셜플랜 같은 대규모 원조를 한 게 국제개발협력 또는 원조의 효시다.
책은 개발경제학이 주류를 이룬 1960~1970년대 국제 정치경제의 변화와 개발학의 상호작용을 비롯해 지난 반세기 동안 개발학의 변화 과정을 상세하게 언급한다. 1960년대 말 종속이론의 등장과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1970년대 정부가 국가 경제개발을 주도해야 한다는 신중상주의의 대두, 여성·젠더·환경 이슈의 등장, 1980~1990년대 신자유주의 등으로 개발학의 주류는 변화를 거듭했다.
특히 1990년대에 와서 아마르티아 센이 자유로서의 발전을 통해 개발을 ‘빈곤 등 자유에 대한 걸림돌을 줄이는 활동’이라고 설명하면서 개발은 경제적 개념을 넘어 ‘인간개발’로 확장됐다. 최근에는 경제의 중심이 동양으로 이동하고 브릭스(BRICS) 등 신흥경제국이 등장하면서 개발학에도 동양 및 신흥국의 경험을 반영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고, 개도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발학의 범주는 방대하다. 정치·외교는 물론 경제학과 국제무역 이론, 지역학, 인류학, 국제분쟁, 이주 등 방대하고 다양한 요인이 개발학의 연구 대상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원조비판론과 원조옹호론이다. 국제 원조는 이를 제공하는 공여국의 국제정치적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라는 시각, 국제협력 체계 안에서 충분한 원조를 제공해야 효과를 발휘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관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책을 쓴 연구팀은 “최근의 개발협력 동향은 원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원조 및 개발협력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원조의 역할이 변화할 것이므로 이를 재조명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조를 제공하는 과정뿐 아니라 원조를 받아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개도국 정부의 환경, 시스템, 조직, 개인의 역량도 함께 개발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라는 설명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