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제주 출생, 2001년 서울예대 입학, 2003년 한국예종 입학, 2003년 신인 무용콩쿠르 특상, 2006년 제1회 CJ 영 페스티벌 무용부문 최우수상, 2008년 벨기에 피핑톰무용단 입단, 2014년 엠넷 ‘댄싱9’ 출연해 MVP 선정
1981년 제주 출생, 2001년 서울예대 입학, 2003년 한국예종 입학, 2003년 신인 무용콩쿠르 특상, 2006년 제1회 CJ 영 페스티벌 무용부문 최우수상, 2008년 벨기에 피핑톰무용단 입단, 2014년 엠넷 ‘댄싱9’ 출연해 MVP 선정
지난달 27일 오후 3시께 서울역에서 만난 현대무용수 김설진 씨(33). 그의 왼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뭔가 봤더니 삼각김밥, 컵라면, 포장된 어묵이 담겨 있었다. “오전부터 일정을 소화하느라 아직 첫끼를 못 먹었어요. 같이 먹어요.”

김씨는 CJ의 케이블채널 엠넷의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 시즌2에 출연해 지난달 15일 MVP를 차지했다. 그는 방송이 끝난 뒤 ‘댄싱9’ 갈라 공연, 화보 촬영, 그외 다른 공연 준비를 하느라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방송 전과 후, 제 춤은 변한 게 없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성원을 보내줘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당황스러워요. 난생 처음 겪는 일입니다.”

지난 6월부터 전파를 탄 ‘댄싱9’ 시즌2에는 발레, 현대무용, 스트리트 댄스,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댄서들이 출연해 경쟁을 펼쳤다. 레드윙스, 블루아이 등 두 팀으로 나뉘어 대결했는데 김씨가 포함된 블루아이 팀이 최종 우승했다. 김씨는 팀 상금 1억원과 3억원 규모의 갈라쇼 공연 기회를 얻었고, MVP 상금으로 1억원을 거머쥐었다.

“방송은 얼굴과 몸매가 빼어나거나, 스토리가 있거나 혹은 젊은 미혼자를 좋아하잖아요. 저는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승할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人사이드 人터뷰] 15년 전 백업댄서 '댄싱킹' 됐어요
제주 출신인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촌형을 따라다니며 힙합춤을 배웠다. 당시 단짝 친구였던 방송인 쿨케이(김도경)와 가수 듀스의 춤을 흉내내곤 했다. 듀스에 얽힌 일화도 있다. “듀스가 제주에 공연을 하러 왔어요. 사인을 받기 위해서 공연장 대기실에 몰래 들어가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만 매니저에게 들켜버린 거예요.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는데 듀스의 멤버 이현도와 고(故) 김성재 씨가 우리를 보더니 불러서 초코파이를 주고 사인도 해줬어요.”

춤에 대한 열정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1998년 그는 서울에 가서 댄서 오디션을 보겠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부모님이 단번에 찬성했을 리는 만무했다. 3개월간 침묵시위를 벌였다. 부모님은 “오디션에 떨어지면 이제 춤 그만 추겠지” 하고 그를 서울로 보냈다. 그런데 덜컥 합격해 버렸다. 그의 춤 인생 첫 장이 펼쳐진 순간이다.

친척 집에 더부살이하며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가수 김원준, 코요태, 조성모의 댄서로 활동하던 그는 고교 졸업 후 1년이 지난 뒤 대학 문을 두드렸다. 강렬한 조명을 받으며 춤을 추다가도 ‘40대가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대무용에 관한 책 3권을 읽고 2분짜리 작품을 만들어 서울예대 입학시험을 통과했다. 그곳에서 2006년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를 만났다.

그를 현대무용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다. 졸업 직전 본 안 교수의 공연이 계기가 됐다. 그렇게 한예종 무용원 창작과에 들어갔고, 안성수픽업그룹 단원으로 활동하며 동시에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됐다. 168㎝의 작은 키는 때때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신체조건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어요. 다른 남자 무용수에 비해 키가 작으니까 ‘저 작은 애 빼라’고 해서 중도에 빠진 적도 많고요. 여자 무용수들과 무대에 설 때에는 관객들이 다 저를 여자인 줄 오해하곤 했죠. 저는 작으니까…. 더 높이 뛰고 더 많이 돌고 더 늦게까지 연습했어요.”

결핍은 역설적으로 가능성을 낳았다. “모든 사람에게 결핍된 면이 있어요. 그런데 전 당시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게 진짜 나의 결핍일까…. 아니에요. 그렇다고 제가 다 채워진 것도 아니죠. 누군가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결핍이 생기게 된다고 봐요. 남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들어있는지 모르는데 결핍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죠?”

대학 졸업 후 무용단을 꾸려 활동하던 그는 2008년 벨기에행 비행기에 올랐다. 국내 무용 작품 유통 구조상 작품을 올려 수익을 낼 수 없었다. 한 작품을 50회 이상 공연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추는데 국내 무용 공연은 적으면 1회, 많아야 3~4회 무대에 오른다. 8일간 진을 빼는 오디션을 거쳐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에 입단했다. 가브리엘라 카리조와 프랭크 샤르티에가 2000년 창단한 무용단으로, 영화와 연극적인 댄스, 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실험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하는 단체였다.

처음엔 동양에서 온 무용수 중 하나였다. 그가 무대에 서는 횟수가 많아지자 유럽 안무가들이 무용수 김설진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작품 워크숍을 하면 한 클래스당 10여명쯤 오는 게 보통이에요. 그런데 제 워크숍에는 이스라엘,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의 안무가들이 45여명이나 몰렸어요. 유럽 극장에서 작업 공간을 주겠다고 제안해오고요. 안무한 솔로 작품도 꽤 잘 팔리고 있었어요.”

이름을 알리던 그가 귀국을 결심한 것은 가족 때문이다. “벨기에에서 함께 생활하던 아내가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하더군요. 세계 투어를 다니느라 집을 자주 비웠거든요. 제가 지금까지 무용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내 덕분이에요. 절 먹여살렸거든요. 무용가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 그냥 배달 일 할까’ 했는데 아내가 집안일은 생각하지 말고 춤에만 집중하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고맙죠.”

프로 무용수로 활동하던 그가 춤 경연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것은 현대무용에 대한 본질적 물음 때문이다. “현대무용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지금 이 시대의 춤을 두루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럽에서 활동할 때 동료 외국인 무용수들이 한국 스트리트 댄서들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정말 잘 춘다’고 극찬을 했어요. ‘댄싱9’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댄서들과 무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현대무용이 대중에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현대무용과 일반 관객들의 거리는 멀다. 이유가 뭘까. “국내 현대무용계에는 다양함이 없어요. 유행을 좇으니까요. 예컨대 피나 바우슈가 유행하면 피나 바우슈 스타일로, 아크람 칸 작품을 보고는 아크람 칸처럼 우르르 만들죠. 관객들보단 비평가, 무용과 교수들 같은 무용계 인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작품을 만듭니다. 관객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안타깝죠.”

김씨에겐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달성하고 싶은 일 목록)가 있다. “목표를 정해놓고 사는 편이에요.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일기장을 발견했는데, 희망사항 목록에 지금 제가 이룬 대부분의 일이 적혀 있는 거 있죠. 점점 하고 싶은 일이 늘어나고 있어요. 단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무용단체를 꾸리고, ‘제주도 댄스캠프’를 만들고 싶어요. 무용을 활용한 영상 작업도 하고 싶고요.”

제주도 댄스캠프는 지난 3년간 구체적으로 구상했다. 내년 안에 달성하는 게 목표다. “유럽에 나가 보니 평소에는 유령도시 같은 곳인데 축제 기간만 되면 사람이 바글바글 한 곳이 많더군요. 잘 만든 축제 하나로 그 도시가 1년을 먹고 산다고 들었어요. 제주에 댄스캠프를 열고 싶어요. 아시아 전역의 춤꾼들이 찾을 수 있는 그런 축제요. 다양한 공연 무대를 꾸미고, 동시에 댄스 수업과 워크숍 등을 열어 제주를 춤 분야에서 아시아의 허브로 키우고 싶습니다.”

발레·한국무용·스트리트댄스·댄스 스포츠…춤, 장르를 허물다

[人사이드 人터뷰] 15년 전 백업댄서 '댄싱킹' 됐어요
댄서의 세계는 춤의 장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춤은 크게 순수무용과 실용무용으로 나뉜다.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 등이 순수무용, 스트리트 댄스·댄스스포츠 등이 실용무용에 속한다.

국내에서 순수무용 장르의 댄서가 되기 위해선 대부분 입시를 거쳐 대학 무용과에 진학하거나 해외 무용 관련 교육기관으로 유학을 간다. 국내의 양대 발레단으로는 국립발레단(단장 강수진)과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이 있다. 정기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뽑는다. 발레단에는 서열이 있다. 코르 드 발레부터 시작해 코리페, 솔리스트, 그랑 솔리스트, 수석무용수 순으로 높아진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는 국내의 국립무용단(단장 윤성주), 국립국악원 무용단(단장 한명옥) 등에 입단해 활동할 수 있다. 발레 무용수의 정년이 40세 이전인 데 비해 한국무용수들에겐 정년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은 춤을 춘다고 보기 때문.

국립현대무용단(단장 안애순)에는 전속 단원이 없다. 공연할 때마다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선발한다. 노조 문제로 인한 폐단을 줄이고, 현대무용의 성격상 상주 단원보다는 작품마다 성격에 맞는 댄서를 무대에 세우기 위해서다. 현대무용계에는 안은미 무용단, 댄스시어터 까두, 유빈 댄스 등의 민간단체도 있다.

스트리트 댄스는 팝핀, 락킹, 왁킹, 힙합, 비보이, 걸스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국내외 스트리트 댄서들은 영국의 ‘비보이챔피언십’, 프랑스의 ‘저스트 데붓’ 등의 스트리트 댄스 대회를 통해 실력을 겨룬다. 국내에도 2회째를 맞는 대회 ‘스트리트 올 라운드 챔피언십’이 있다. 댄스스포츠는 2005년 동아시아게임 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대한댄스스포츠 경기연맹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다.

이처럼 춤 안에는 많은 장르가 있지만 춤을 장르 안에 가두는 것은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장르의 벽을 허무는 게 추세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사진=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