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가 반한 한국의 스타트업] "10주 동안 매주 찾아 한 시간씩 설득했죠"
미국 실리콘밸리의 와이-컴비네이터. 이곳은 빈방 공유 서비스로 유명한 에어비앤비, 전 세계 1억 명 이용자를 둔 클라우드 서비스 드롭박스 등을 10조 원 가치의 기업으로 키워낸 액셀러레이터의 원조이자 모범으로 꼽힌다. 최근 이 와이-컴비네이터가 한 한국 기업에 주목했다. 뷰티 커머스 업체인 ‘미미박스(memebox)’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올 2월 미미박스에 10만 달러(약 1억 원)를 투자했다. 한국 기업으론 최초로 이곳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총 15만 달러에 해당하는 기업 인프라 사용도 지원 받았다. 출범한 지 2년밖에 안 된 신생 벤처회사가 어떻게 좋은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까. 하형석(31) 미미박스 대표는 ‘믿음과 신뢰’를 강조한다.

“미미박스의 사업 모델에 확신을 갖고 투자자들에게 꾸준하게 ‘할 수 있다, 해내겠다’는 믿음을 심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투자자와 기업가의 돈독한 신뢰가 비즈니스의 기본입니다.”

론칭 2년 차, 미국이 ‘찜’하다

미미박스는 2012년 2월 하 대표가 창업한 국내 벤처 회사다. 그가 자신하는 미미박스의 주력 사업 모델은 매달 구독료 1만6500원을 낸 고객에게 뷰티 전문가가 선택한 7만~8만 원 상당의 최신 트렌드 화장품을 한 달에 한 박스(미미박스)씩 보내 주는 서비스다. 티켓몬스터나 쿠팡이 할인 쿠폰으로 상품을 공동 구매하는 소셜 커머스라면 미미박스는 신상 화장품을 정기 구독하듯 받아 보는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제품 정기 구독 서비스)’다. 미미박스는 현재 국내외 1000여 개 화장품 브랜드와 제휴, 다양한 제품을 고객에게 전달한다. 써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은 뷰티 전문 커머스인 ‘미미샵’에서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살 수도 있다.

미미박스는 미미박스와 함께하는 뷰티 브랜드에도 이점을 제공한다. 미미박스는 브랜드의 제품을 무료로 협찬 받는다. 그 대신 기업에 다양한 광고·홍보활동과 마케팅 보고서를 제공한다. 인기 뷰티 방송 프로그램에 특정 제품을 소개하며 홍보에 주력하는가 하면 20페이지짜리 주간 보고서와 110페이지에 달하는 월간 보고서를 보낸다. 보고서에는 고객의 연령, 지역, 피부 타입, 구매 패턴 등 제휴사가 원하는 정보를 빼곡히 담는다.

“브랜드 쪽에서 보면 하나의 연구·개발(R&D)센터가 생긴 셈이죠. 제품 하나에도 많은 연구를 하거든요. 최근엔 고객 니즈에 맞는 제품을 브랜드 측에 의뢰해 컬래버레이션 제작도 합니다. 바닐라코·조성아(크리에이티브 디렉터)·포니(뷰티 아티스트) 등과 함께 작업했죠.”

이런 전략은 매출로 이어졌다. 사업 초기 자본금은 3500만 원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연매출 13억 원, 2013년 50억 원을 달성했다. 2014년은 20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미미박스 회원 수도 올 8월 기준으로 50만 명을 웃돈다.

하 대표는 “군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미국인 동료 병사로부터 패션과 마케팅 분야에 눈을 뜨고 2011년 소셜 커머스 티켓몬스터의 뷰티 팀장을 거치며 익힌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물”이라고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와이-컴비네이터를 비롯한 해외 투자자들이 미미박스에 주목한 것 역시 단시간 내 대폭 성장한 미미박스의 저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나는 글로벌 벤처다’에서 미미박스가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와이-컴비네이터 이사진이 방한해 많은 스타트업과 미팅을 했었고요. 그때 그들이 제게 ‘미국에 진출해도 되겠다’고 귀띔했어요. 사실 창업할 때부터 해외 진출을 꿈꿨던 터라 그들의 말이 미국으로 떠나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9월 하 대표와 네 명의 이사진은 대상 상금으로 받은 1000만 원을 들고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한국 화장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국내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해외에 알리는 통로가 되고 싶었던 이유도 컸고요. 그리고 어차피 해외로 나갈 것이라면 가장 어려운 나라인 미국(뷰티 시장 세계 1위)으로 진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오래였고요.”

“글로벌 매출액 300억 달성할 것”

믿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하 대표는 미국 진출 전 미미박스 트래픽을 분석한 결과 한국 다음으로 미국 이용률이 높은 것을 발견했다. 또 미국에서 9월 한 달 동안 예산 150만 원을 들여 시범 사업을 해봤다. 그 결과 한 달 만에 거래 금액만 1000만 원이 발생했다.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현지인들에게도 입소문이 퍼진 게 이유였다. ‘K-뷰티’ 바람이 한몫했다. 미국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엿본 셈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투자의 필요성을 느낀 하 대표는 미국에 장기간 머무르며 투자자 잡기에 나섰다.

“지인에게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기업가 몇 명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같은 시간에 그들을 찾아갔어요. 제가 한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알리기 위해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또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든 상황을 알렸죠. 회원 수나 매출액 변동, 시스템 오류까지 말입니다. 보고에 가까웠던 그 미팅을 10주 동안 하면서 제가 원했던 건 그들의 조언이었어요. 그들에게 배우고 싶었죠.”

미미박스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게 된 지인들은 결국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미미박스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 소개는 투자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참 아이러니해요. 그런데 이게 실리콘밸리의 특징이죠. 믿음과 신뢰로 투자까지 이어지는 것 말입니다. 제 친구들의 투자자가 지금의 제 투자자가 됐어요. 한번은 친구 소개로 잡힌 투자자 미팅이었는데, 미미박스에 대해 질문 한 번 안 하더니 계약서에 사인을 하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아무 질문도 없었느냐고…. 그랬더니 그 투자자 말이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가가 투자자를 속이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노력해 온 미미박스는 현재 26명의 든든한 투자자가 생겼다. 그 덕분에 영업 성적이 크게 뛰었다. 지난 1월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에 미국 지사를 세운 이후 현재까지 2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매월 50% 이상 성장 중이다.

지난 8월 14일에는 중국 상하이 지사를 오픈했다. 움직임이 빠른 건 미미박스의 사업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배송 중심이다 보니 자체 오프라인 매장을 둘 필요가 없는데다 쇼핑몰 서비스도 번역만 하면 쉽게 이뤄진다. 또 미미박스의 트래픽 순위가 한국· 미국 다음 중국순이다. 미미박스 고객 톱 30 중 13명이 중국인인 점도 중국 시장의 성공을 예견한다. 하 대표는 올해 한국·미국·중국 글로벌 시장에서 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1800여 개 중 1000여 개 화장품 회사가 해외 사업팀이 없어 글로벌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데, 미미박스가 이들 제품을 들고 해외에 진출함으로써 동반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