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파운드화
영국 문호들의 작품 가운데 제목에 돈이 들어간 경우가 종종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1919),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1938)가 대표적이다. 영국 화폐단위로 파운드(pound)만 알고 있다가는 펜스, 기니, 실링이 나오는 옛 글을 볼 때 헷갈리기 십상이다.

1960년대까지 영국 화폐단위는 12진법과 20진법의 혼합이었다. 고대 로마와 켈트족 계산법이 뒤섞였으니 당연히 복잡했다.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였다. 즉 1파운드=20실링=240펜스다. 따라서 6펜스는 현재 원화로 약 42원인 작은 돈이다. 그러나 1971년부턴 10진법을 도입해 실링이 사라지고 1파운드=100펜스로만 쓴다.

기니(guinea)는 별개 단위다. 1기니는 21실링(1파운드+1실링)이다. 이런 희한한 단위를 쓴 것은 귀족들이 팁을 얹어주던 관행과 연관이 있다. 지금도 런던의 고급 맞춤양복점에선 가격을 기니로 표시한다. 또한 기니 하면 작고 귀여운 애완동물 기니피그가 연상된다. 16세기 남미 기아나에서 영국으로 들여왔는데, 가격이 당시로선 큰돈인 1기니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게 정설이다. 물가를 감안할 때 1550년대 1기니는 현재 350파운드(약 58만원) 값어치다.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도 현재 가치로 30만원쯤 된다.

파운드 표시는 P가 아닌 L(£)이다. 이는 로마 동전 리브라(Libra)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프랑스 루이14세 때 리브르, 이탈리아의 리라가 됐고 영국에선 같은 질량 단위인 파운드로 불렀다. 1파운드(lb=리브르)는 약 0.45㎏이다.

파운드의 정식 명칭은 ‘파운드 스털링’이다. 해가 지지 않는 영연방의 화폐로, 1차대전 전까진 최대 기축통화였다. 지금은 달러, 유로, 엔화에 이어 네 번째다. 1971년 미국이 금 태환을 정지해 달러값이 폭락하자 파운드 환율이 2.47달러까지 뛴 적도 있다. 1992년 조지 소로스의 공격에 백기투항하기도 했다. 파운드의 영욕이 곧 영국 현대사다.

오는 18일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투표를 앞두고 파운드화가 맥을 못 춘다는 소식이다. 지난 6일 파운드화 환율이 1.61달러로 10개월 만에 최저였다. 만약 독립안이 가결되면 영국 국기 유니언잭에서 스코틀랜드 상징인 푸른색 바탕과 흰색 X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 독립은 도미노처럼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파운드 약세→달러 강세→엔 약세’로 가뜩이나 힘든 수출기업들의 고전이 우려된다. 세상은 넓고 경제 변수도 너무 많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