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졸업생 대표 권은진 씨 "다양한 사람들 만나 '휴먼 투어'…세상과 소통할 것"
“누구나 아무것도 없는 막막한 길을 걸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정해지고 약속된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거꾸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달 말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연설에 나선 권은진 씨(24·자유전공학부·사진)의 말이다.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권씨는 ‘인문소통학’이라는 전공을 직접 만들어 졸업했다. 서울대에 학생 스스로 2개 이상의 학문을 융합해 전공으로 이수할 수 있는 ‘학생 설계 전공제도’가 마련돼 있는 덕분이다.

졸업과 함께 구글에 입사한 권씨를 지난 3일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공인 인문소통학 얘기부터 꺼내봤다. 권씨는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인간다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었다”며 “이것이 인문소통학이란 전공을 만들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역사 미학 경제학 등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아우르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권씨는 자신만의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휴먼 투어’와 ‘생각 공방’이라는 독특한 개념도 만들어냈다. “휴먼 투어는 철학자 경제학자 정치가 등 다양한 분야의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겠다는 뜻입니다. 단지 그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듣자는 건 아닙니다. 그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개념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원천을 탐구해보겠다는 거죠.”

권씨는 “인터뷰를 마칠 때마다 ‘사람들이 같이 생각해볼 만한 질문도 한 가지씩 제시해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라며 “이런 질문들을 모아 함께 생각해보고 토론하는 공간이 바로 ‘생각 공방’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글 입사 면접 당시에도 권씨는 휴먼 투어와 생각 공방의 아이디어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 ‘구글러(구글 직원)’로서 성장해가면서 나만의 프로젝트를 조금씩 완성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권씨는 지난해 대통령이 수여하는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만의 창의적인 꿈을 찾아 대학 시절을 보낸 덕분이었다. 그는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꾸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대학에서 인문소통학과 더불어 경제학을 복수로 전공했습니다. 저에게 인문학이 꿈이라면 경제학은 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랄까요.”

권씨는 작가 미상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시구 중에 ‘삶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곁에 있는가에 달려 있음을 나는 배웠다’라는 말이 있다”며 “매우 와닿는 문구라 항상 맘속에 품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떻게 하면 삶이 행복해지고 세상이 좀 더 밝아질 수 있을까. 권씨에게 물어봤다. “글쎄요. 답보다는 질문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게 바로 인문학입니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의 의미를 더해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정해진 답을 놓고 그것으로만 달려가고 있기에 쉽게 피로해지는 것 아닐까요.”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