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스코틀랜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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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8세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는 ‘북부의 아테네’로 불렸다. “로열 마일 사거리에 서 있으면 몇 분 이내에 천재와 지식인 50여명을 만날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등 위대한 사상가들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11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편입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그는 열두 살 때 에든버러대에 입학해서 철학과 문학에 몰두했고, 훗날 ‘인성론’ ‘도덕 원리에 관한 연구’ 등 불후의 명작을 썼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흄보다 12년 뒤인 1723년 에든버러 북쪽의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글래스고대에 입학한 그는 도덕철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로 갔지만 흄의 ‘인성론’을 금하는 등 낮은 학문 수준에 실망해 돌아오고 말았다.
두 사람은 1750년 에든버러에서 만난 이후 역사와 정치, 경제, 철학을 논하며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이 둘의 뛰어난 성찰의 결과였다. 이들은 경험론의 철학적 기초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발전시켰고, 독일철학의 관념주의를 넘어 현대 영미철학의 뿌리를 형성했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흄의 명언처럼 현실의 경험 속에서 덕을 함양할 때 개인과 사회 모두가 발전한다고 믿었다.
이는 스코틀랜드인 조부모를 둔 독일 철학자 칸트를 거쳐 프랑스의 프레데릭 바스티아와 알렉시스 드 토크빌,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와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로 이어졌고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과 제임스 뷰캐넌, 더글러스 노스로 확산됐다. 자유주의 사상의 큰 줄기가 300여년 전 에든버러에서 시작됐으니 스코틀랜드 철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만하다.
이런 사상이 존 로로 하여금 중앙은행제도를 만들게 했고, 노벨상 수상자를 10명이나 낳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등 신흥국들의 운명까지 바꾼 근대정신의 출발점이 바로 스코티시 철학이다.
18세기 중엽에 이미 문자해독률이 75%를 넘었던 나라, 스카치 위스키와 골프, 백파이프와 킬티 스커트로 대표되는 문화의 나라, 거기에 유럽 최대를 자랑하는 북해유전까지 가진 나라. 스코틀랜드의 독립 요구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파운드화 공유 문제 등 현실의 벽도 만만찮다. 이는 300여년 전 태동한 계몽주의 철학처럼 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이 미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논리실증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1711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편입된 지 5년째 되던 해였다. 그는 열두 살 때 에든버러대에 입학해서 철학과 문학에 몰두했고, 훗날 ‘인성론’ ‘도덕 원리에 관한 연구’ 등 불후의 명작을 썼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흄보다 12년 뒤인 1723년 에든버러 북쪽의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글래스고대에 입학한 그는 도덕철학을 공부하다 옥스퍼드로 갔지만 흄의 ‘인성론’을 금하는 등 낮은 학문 수준에 실망해 돌아오고 말았다.
두 사람은 1750년 에든버러에서 만난 이후 역사와 정치, 경제, 철학을 논하며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이 둘의 뛰어난 성찰의 결과였다. 이들은 경험론의 철학적 기초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발전시켰고, 독일철학의 관념주의를 넘어 현대 영미철학의 뿌리를 형성했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는 흄의 명언처럼 현실의 경험 속에서 덕을 함양할 때 개인과 사회 모두가 발전한다고 믿었다.
이는 스코틀랜드인 조부모를 둔 독일 철학자 칸트를 거쳐 프랑스의 프레데릭 바스티아와 알렉시스 드 토크빌,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와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로 이어졌고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과 제임스 뷰캐넌, 더글러스 노스로 확산됐다. 자유주의 사상의 큰 줄기가 300여년 전 에든버러에서 시작됐으니 스코틀랜드 철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만하다.
이런 사상이 존 로로 하여금 중앙은행제도를 만들게 했고, 노벨상 수상자를 10명이나 낳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등 신흥국들의 운명까지 바꾼 근대정신의 출발점이 바로 스코티시 철학이다.
18세기 중엽에 이미 문자해독률이 75%를 넘었던 나라, 스카치 위스키와 골프, 백파이프와 킬티 스커트로 대표되는 문화의 나라, 거기에 유럽 최대를 자랑하는 북해유전까지 가진 나라. 스코틀랜드의 독립 요구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파운드화 공유 문제 등 현실의 벽도 만만찮다. 이는 300여년 전 태동한 계몽주의 철학처럼 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파장이 미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