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혼란 부른 주택정비정책
9·1 부동산 대책 발표로 리모델링 시장이 ‘멘붕’에 빠졌다. 정부가 ‘재건축 추진 시점 10년 단축’ 등 강력한 재건축시장 활성화 방안을 불쑥 내놓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과 목동 등 수혜지역 아파트 호가가 뛰는 등 약발도 신속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정부가 리모델링 아파트 수직증축을 전격 허용한 뒤 사업추진을 서둘러온 분당신도시 단지들은 사업 중단 등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투기 우려, 전세난, 자원 낭비 등의 문제는 물론 기존 정책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이유로 냉담한 반응이다. 전문가들도 국가의 주택정비정책이 지나치게 부동산시장 활성화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건축 연한 ‘몰빵 단축’ 부작용

9·1 주택시장 활성화 대책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19개월 만에 여덟 번째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다. 재건축 활성화와 청약규제 완화 등 집값 상승과 분양시장에 인화성이 강한 대책을 패키지로 담았다. 이 중 ‘재건축 추진 시점 10년 단축(준공 이후 최대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 대책이 관심 대상으로 뜨고 있다. 수혜 대상으로 꼽히는 강남·목동 단지들에서는 1주일 새 집값이 1000만~2000만원씩 뛰는 등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후유증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수요자들에게 ‘재건축=대박’이란 막연한 환상을 조장할 수 있다. 수익성이 취약한 단지들까지 덩달아 가격이 뛰면서 ‘거래 없는 호가 상승’의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리모델링시장 반응은 심상찮은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부동산업계는 최근까지만 해도 리모델링시장이 재건축·재개발 못지않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가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건축 연한 ‘몰빵 단축’이 불거지면서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몰락할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재건축에 시선이 쏠리면서 사업 추진에 이견을 제시하는 조합원이 늘고 있어서다. 건설사와 설계업계도 신기술 개발에 몰입하는 등 시장 진입 준비를 해왔는데 허망하다는 반응이다.

주택정비방식 다양하게 해야

정부가 예고 없이 선심 쓰듯, 시장에 충격이 큰 연한 단축 방안을 내놓고 기존 재건축 연한 기준을 흔드는 것도 문제다. 지자체들이 조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건축시장 혼선이 장기화할 수 있어서다. 국가의 주택정비정책 본질은 주거환경 개선이다. 낡은 아파트 단지를 어떻게 개선할지는 주민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재건축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 선진국형 주택정비시장 다각화도 물 건너갈 수 있다. 수요자들이 마음 편하게 각자 상황에 맞는 주택정비방식(재건축 재개발 리모델링 도시재생)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갖춰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건축 연한 몰빵 단축’이 기대효과 못지않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걱정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주택정비정책을 ‘부동산시장 살리기’나 ‘건설업계 일감 창출’ 등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안 된다. 국민의 주거환경 개선과 도시의 지속성 유지라는 본질을 지켜낼 수 없다. 도시정비산업 선진화도 기대할 수 없다. 건설업계가 첨단 주택정비기술을 축적하는 데에도 정부의 정책 안정성은 기본이다. 주택정비사업에 대한 수요자들의 과잉 기대도 ‘정비’가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처럼 ‘물 좋은 재건축·리모델링시장’이 재현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박영신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