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진영 지원 요청에도 '현실정치 불개입' 태도 고수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 논쟁에 왕실을 끌어들이지 마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오는 18일 주민투표를 시행하는 스코틀랜드 독립 논쟁에 대해 엄정중립 태도를 강조하고 나섰다.

분리독립 지지율 상승으로 막판 투표전 판세가 혼미해지면서 찬반 운동진영에서 여왕의 지지를 등에 업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정치권을 향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10일(현지시간)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대변인을 통해 "왕실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은 영국 민주주의의 원칙이자 재임기간에 실천해온 신념"이라며 이번 주민투표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버킹엄궁 대변인은 "여왕은 이번 주민투표가 스코틀랜드 주민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으며, 여왕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치권은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여왕의 확고한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분리독립 운동을 이끄는 알렉스 새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스코틀랜드 독립을 여왕이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해 이런 우려를 불렀다.

새먼드 수반은 전날 "스코틀랜드 인들이 여왕을 군주로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여왕도 독립한 스코틀랜드의 군주가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 확실하다"고 말해 왕실을 자극했다.

새먼드 수반의 발언은 최근 분리독립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 가능성이 가시화하는 상황과 관련 왕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반대운동 진영의 주장에 반박하려는 의도였다.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진영은 영연방에서 분리되더라도 여왕의 군주 지위는 캐나다와 호주처럼 계속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앞서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민투표 문제에는 중립 자세를 지키고 있지만 독립 여론이 늘어나는 상황을 심상찮게 여기고 있다는 왕실의 기류를 전하기도 했다.

집권 보수당 내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여왕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론에 자제를 호소하도록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자치권 확대 논란이 일었던 1977년 당시 "우리가 모두 영연방에 남아있을 때 누릴 수 있는 이점을 상기해야 한다"며 연방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여왕은 2002년에도 스코틀랜드 의회 연설에서 자치권 확대를 축하하며 영연방의 결속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실이 선거전 과열을 우려하며 중립성 유지를 강조하자 분리독립 논쟁에 여왕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자성론으로 이어졌다.

보수당의 찰스 워커 하원의원은 "새먼드 수반은 여왕을 분리독립 투표 논쟁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며 "그는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투표일이 8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보수당·노동당·자유민주당 3당 대표들이 스코틀랜드로 이동해 독립저지 지원 활동에 나서는 등 막판 투표전의 열기는 달아오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데일리메일 기고를 통해 "영국 연방의 소중한 가족이 찢어지는 상황은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스코틀랜드의 밝은 미래는 영국 연방에 남으면서 자치권을 확대하는 데 달려있다"고 독립안 부결을 호소했다.

(런던연합뉴스) 김태한 특파원 th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