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추석 연휴를 마치고 개장하자마자 환율이 요동쳤다. 11일 원·엔 환율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외환시장이 추석 연휴를 마치고 개장하자마자 환율이 요동쳤다. 11일 원·엔 환율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일본의 통화정책이 엇갈린 가운데 ‘글로벌 통화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위기에 빠진 유로존이 전격적인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 발표로 방아쇠를 당긴 가운데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로화와 엔화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회복세를 타고 있는 미국이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채비를 하자 신흥국 통화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움직임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각국 외환시장에 파장을 미치면서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 선제적 금리 인상 나서나

[요동치는 글로벌 금융시장] 美 - EU·日 엇갈린 통화정책…신흥국, 환율 요동에 '멀미'
10일(현지시간) 미국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84.28을 기록, 52주 최고점인 84.59에 바짝 다가섰다. 오는 16~17일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다음달 양적완화 종료와 함께 조기 금리 인상 신호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달러 강세에 힘을 더하고 있다. 시장에선 지금까지 미 중앙은행(Fed)의 공식 입장이었던 ‘상당 기간 저금리 유지’ 문구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는 4.2%(연율)를 기록하고 고용과 판매, 투자 등 전 부문의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Fed가 경기과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경우 달러 강세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과 일본은 돈 풀기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4일 발표한 추가 경기부양 조치는 유로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일각에선 다른 국가들이 환율 방어에 나서도록 자극, 글로벌 통화전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CB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연 0.05%로 인하하고 다음달부터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커버드본드를 사들이는 제한적 양적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ECB의 이 같은 조치는 약 1조유로(약 1337조8100억원)를 시중에 푸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CB는 더 나아가 회원국 국채를 매입하는 전면적인 양적완화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ECB의 양적완화 발표 영향으로 유로화가치는 지난 10일 14개월 만에 최저(유로당 1.29달러)로 떨어졌다.

일본은행도 추가 양적완화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지난 4월 소비세 인상 충격으로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면담 이후 “(물가)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상황이 되면 주저 없이 추가 완화든 뭐든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전해지며 도쿄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중 107.02엔까지 치솟으며 2008년 9월25일 이후 6년 만에 최고(엔화 약세)를 기록했다.

신흥국, 미 금리 인상 우려 ‘휘청’

신흥국 외환시장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휘청거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터키 리라화가치는 10일 기준 달러당 2.19리라로, 지난 3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도 달러당 10.94랜드로 최근 7개월래 최저치를 경신했다. 리라와 랜드화는 달러당 이번주에만 각각 달러대비 3%와 4% 하락했다. 루이스 코스트 씨티그룹 신흥시장 분석가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 통화가치가 순식간에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터키와 남아공은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와 함께 외부충격에 금융시장이 쉽게 흔들리는 이른바 ‘취약 5개국’(F5)으로 분류된 국가들이다. 빅토르 스자보 아베르딘 애셋매니지먼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이 다시 한 번 ‘F5 리스크’를 상기시켰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ECB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아시아로 몰려와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방송인 CNBC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들어오는 돈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라며 “아시아 국가들이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유럽과 아시아 간 통화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가세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외환시장 흐름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추가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는 중국과 통화동맹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은 이날 이고르 슈바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가 베이징에서 양국이 독자적인 국제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는 유로 회원국이 러시아 국채매입 중단과 함께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 따른 것이다. 통신은 러시아가 금융시장에 대한 서방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논의 배경을 전했다.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분리주의 움직임도 환율전쟁의 변수가 되고 있다. 영국 파운드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이달 초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가능성이 불거지며 연중 최저인 1.60달러까지 떨어졌다. 스코틀랜드가 분리되면 영국 전체 원유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북해 유전을 잃게 돼 영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뉴욕=이심기/도쿄=서정환 특파원/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