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진정한 1등은 위기 때 진가 발휘… 신소재·배터리 실적 앞세워 2017년 매출 30조 달성하겠다"
요즘 화학업계는 짙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중국의 저성장 기조에다 전방(前方) 산업 침체로 실적이 바닥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중동 에탄가스와 미국 셰일가스 등 저가 원료의 등장으로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뀌고 있어서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한국 화학기업들이 지속 성장 가능한 경쟁력을 갖출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임직원들에게도 세찬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강한 풀을 알 수 있다는 뜻의 질풍경초(疾風勁草)를 강조한다.

박 부회장은 “진정한 일등은 어려울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라며 “범용 제품에서 고부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연구개발(R&D)을 통해 세상에 없던 신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해 어떤 상황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화학업계가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올해 초 예상했던 대로 신흥시장의 경제 성장 둔화, 중국 시장의 자급률 확대 및 중국 현지업체의 기술력 향상 등이 실제 사업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여건은 누구에게나 같아요. 어려운 상황을 잘 견디고 체질을 강화하면 거꾸로 기회가 됩니다.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 새로운 강자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죠. LG화학도 고부가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하고 있고 차별화된 신제품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래 준비를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을 겁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뚫을 것인지요.

“사실 위기를 뚫고 나갈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겁니다. 시장 변화를 먼저 내다보고,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집요하리만큼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바로 기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입니다. ‘환경이 어렵다. 그래서 힘들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바꿔서 고민해야 합니다. 생각의 차이가 성과의 차이를 낳는 법이니까요.”

▷연초부터 안전 환경을 무척 강조하고 있는데요.

“안전 환경은 모든 사업활동에서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의 하나입니다. 생산과 품질이 아무리 완벽해도 안전 환경 관련 사고가 발생하면 이는 안 한 것만 못해요. 안전 환경 사고는 한마디로 ‘과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안전 환경에도 공짜가 없어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안전 환경이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안전 환경에서 99.9%는 의미가 없어요. 부족한 0.1%를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죠. 안전 환경 문화는 단시일 내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콩나물을 기를 때 콩나물시루에 대고 물을 부으면 대부분 밑으로 흘러내려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콩나물은 흘러내리는 물 중 극히 일부를 흡수해 서서히 자랍니다. 안전 환경도 마찬가지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실행해야 제대로 된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어요.”

▷얼마 전 미래 신소재 육성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하셨는데….

“기술 기반 사업의 하나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은 벌써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어요. 일례로 자동차 헤드램프용 베젤 제품의 경우 세계적인 경쟁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과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R&D, 생산, 기술, 영업 등의 인력으로 팀을 구성해 보통 3년 이상 소요되는 납품심사를 1년 반 만에 해냈지요. 현재 EP 사업의 자동차 부문 매출 비중은 약 30% 수준인데 2018년까지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특히 고성장이 예상되는 중국에 공장 설립도 검토 중입니다. 고흡수성 수지(SAP)와 합성고무 사업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어 2018년까지 이들 3개 사업군에서 4조5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인수한 수처리필터 전문업체인 나노H2O도 LG 나노H2O로 회사명을 바꾸고 본격적인 확장에 나서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유망 신소재 분야에서도 곧 눈에 띄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보전자소재 부문의 실적이 좋지 않습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과도기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현재 정보전자소재 부문은 LCD(액정표시장치) 비중이 높아요. 그런데 LCD 성장이 정체돼 있는 반면,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2016년 이후 30%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죠. LG화학은 2000년에 이미 OLED 물질을 개발했고, 지난해는 세계 최초로 OLED용 접착봉지 필름 양산에도 성공했어요. OLED조명 패널 등 유망 신사업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LCD는 성장이 정체되고 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하나씩 찾아가고 있어요. 30%의 고성장이 예상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해 난징공장에 LCD용 편광판 전공정 생산체제를 구축한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지난 3월에는 2호 라인을 추가로 증설해 4200만㎡로 생산 능력을 높였어요. 이렇게 매출과 수익성 모두 점차 끌어올려갈 계획입니다.”

▷최근 아우디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세계 10대 완성차 그룹 중 6곳이 저희 고객사에요. 전체적으로는 20여곳의 완성차 고객사로부터 이미 수백만대 규모의 물량을 확보했습니다. LG화학의 배터리로 도로에서 운행되고 있는 전기차는 32만대가 넘습니다. 안전성과 성능이 검증된 것이죠. 더구나 경쟁사 대비 원가 경쟁력도 뛰어나 수주 물량은 계속 늘어날 겁니다. 올해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만 누적 매출 10조원 달성이 목표입니다. 누군가 배터리가 필요로 할 때 LG화학을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시장 지위를 확고히 할 계획입니다.”

▷하반기 공채가 시작됐는데요.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고, 언제나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을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입사원 교육 때 ‘한 치수 더 큰 모자를 써라(one size bigger hat)’는 말을 자주 합니다. 바로 자신의 위치보다 한 직급 위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고민할 때 본인의 역량이 크게 향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평소 인재경영을 강조한다고 들었습니다.

“제 경영 사전에는 ‘고객’과 ‘인재’ 두 단어만 있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가치를 고객에게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데 이를 실현하는 주체가 바로 ‘인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재가 고객가치 실현이라는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여성 인재 육성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얼마 전 여성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의견도 들었죠. 여성 직원들의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탄력근무제 도입도 검토 중입니다.”

▷포부가 있다면.

“2017년 매출 30조원을 달성하고 R&D가 강한 세계적 소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업 전반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놓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력사업 분야의 기술력과 품질을 더욱 끌어올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는 아끼지 않고 투자할 겁니다. 무엇보다 잠재력 있는 협력회사의 성장을 돕고, 투자를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책임감 있는 기업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