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환상과 신화를 벗겨낸 이중섭의 민낯
화가 이중섭은 1956년 9월6일 오후 11시45분, 서대문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간염과 영양실조로 눈을 감았다. 무연고자로 처리돼 영안실에서 사흘을 보냈다. 9월9일, 문인 김이석이 문병을 왔다가 시신이 된 이중섭을 발견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유족 이광석, 이영진과 동료 화가들이 이튿날 자리에 모였다. 병원은 18만원짜리 입원비 청구서를 내밀었다. 십시일반 모인 돈이 9만원. 병원에서 청구액의 절반을 깎아줬다. 이중섭은 다음날 영구차에 올라 병원 뒷문을 빠져나갔고, 그제서야 한 줌 재가 될 수 있었다.

《이중섭 평전》은 이중섭의 생애를 객관적인 기록에 따라 복원한 책이다. 마흔에 걸친 이중섭의 삶이 각각 8개 장에 나뉘어 담겼다. 외전 형식으로 그가 떠난 이후의 상황도 그려져 있다. 책 뒷부분에는 그의 주요 작품이 원색으로 실렸다. 이중섭의 생애에서 신화와 환상이 된 요소를 벗기는 데 애쓴 점이 특징이다.

이중섭은 지금껏 민족 정신을 추구하는 이념 때문에 오산고보에 진학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당시 이중섭은 평양 제2고등보통학교에 두 차례 연이어 낙방했다. 이중섭을 돌보던 외할아버지 이진태는 불호령 대신 한 해를 쉬도록 했다. 그리곤 고심 끝에 1930년 오산고보에 보내기로 했다. 오산고보 설립자인 이승훈과의 인연 때문이다.

1956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이중섭의 은지화(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그림) 세 점에 얽힌 이야기도 나온다. 아시아 화가 중 첫 모마 입성이었다. 항간에는 이중섭이 이 소식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중섭은 살아 생전 자신의 작품이 모마에 소장된 사실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은지화 기증자인 아더 J 맥타가트의 글이 이를 입증한다.

오랜 벗인 시인 구상은 이중섭을 이렇게 기억한다. “중섭은 호구나 거처의 마련도 없으면서 놀랍게도 이렇게 많은 그림을 그려 남겼다.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또는 담뱃갑 은지에다 그렸고, 물감과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부산 제주 충무 진주 대구 서울 등을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