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화 다양성의 힘
스페인 지방도시로 종종 출장을 가는데, 같은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지방색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언어권에 따라 도로 이정표부터 달라진다. 켈트족 언어에 뿌리를 둔 바스크어는 라틴어 계열의 스페인어와 알파벳조차 달라 읽을 엄두도 내기 힘들다. 지역에 따라 음식과 풍습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스페인이 이렇게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갖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우선 지중해와 대서양을 접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이베리아반도는 역사적으로 로마인, 게르만인, 유대인, 무어인 등 수많은 인종과 문명이 경쟁, 공존해온 지정학적 무대였다. 또 건조기후, 지중해성기후, 고산기후 등 다양한 기후 환경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스페인의 문화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슬람 건축 양식과 서구 건축 양식을 결합한 ‘무데하르’ 양식을 들 수 있다. 15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뒤에 타일 장식과 아라베스크 문양, 아치형 구조 등 이슬람 건축 양식의 장점을 받아들인 것인데, 스페인 고유의 기독교 건축문화로 발전해 수많은 건축 문화유산을 남겼다. 바르셀로나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 역시 스페인의 다양한 건축문화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건축세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문화 다양성이 예술적 창조의 자양분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 다양성의 힘은 비단 예술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문명의 융합을 통해 형성된 다양한 문화유적 및 예술작품, 개성 있는 지역문화는 스페인이 매년 6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대국이 된 비결이기도 하다. 세계를 제패한 패션브랜드 자라(Zara)의 성공 키워드도 제품의 다양성과 타문화와의 소통이었다.

문화 다양성은 글로벌시대의 뚜렷한 추세다. 유엔 세계관광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객은 약 11억명에 달했다.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상이한 문화에 노출되고 상호작용을 했다는 의미다. 출신 국가를 떠나 사는 이민자 수가 2억명을 넘은 지도 오래다.

창조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선진국들은 문화 다양성을 교류와 혁신, 창의성을 촉진하는 핵심 가치로 보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고 현지의 문화적 특성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세워 대응하고 있다.

한국의 성장 전략이나 문화융성 전략도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다문화와 소통하고 융합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창조와 혁신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올 확률이 높다.

박희권 < 駐스페인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