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백, 접시 위 예술가의 손맛 체험…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
떡국에 떡 대신 치즈를 넣으면 어떤 맛이 날까. 크림이나 토마토 소스 대신 두부와 청양고추를 넣어 파스타를 만들면 어떨까.

서울 신사동의 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의 최현석 셰프는 이런 공상을 현실화했다. 그의 별명은 ‘크레이지(crazy) 셰프’다. 기발한 요리를 많이 개발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를 기본으로 프랑스 요리와 한식, 일식의 요소를 가미해 독특한 메뉴를 선보인다. ‘엘본 더 테이블’의 ‘엘본’은 ‘노블(noble)’을 거꾸로 쓴 것이다. 고품격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흑과백, 접시 위 예술가의 손맛 체험…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
내부 디자인은 흑과 백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바닥과 천장, 기둥이 모두 검은색이고 오픈 키친의 조리대도 어두운 색이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새하얀 식탁보가 깔린 4인용 테이블이 두 줄로 나란히 이어진다. 그 위로는 주황색 조명이 비친다.

흑과 백을 대비시켜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되 조명은 따뜻한 색으로 해 너무 무겁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 레스토랑 측 설명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오픈 키친과 마주한 바 형태의 셰프 테이블이다. 음식을 먹으며 2~3m 거리에서 요리사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흑과백, 접시 위 예술가의 손맛 체험…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
‘크레이지 셰프’만이 할 수 있는 요리를 몇 가지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바닷가재와 장미’가 첫 번째로 나왔다. 살짝 데친 바닷가재에 캐비아(철갑상어 알)를 얹고 식용 장미액을 뿌렸다. 장미액은 약간 신맛이 나고 향이 좋아 케이크 등 디저트에 상큼한 맛을 내는 데 종종 쓰이는 재료다. 바닷가재와 캐비아가 부드럽게 씹히는 사이로 과일향 샴푸를 연상시키는 향이 퍼져 나왔다.

이어서 ‘푸아그라 간장찜’을 맛봤다. 이름 그대로 푸아그라를 찐 뒤 간장으로 맛을 낸 요리다. 구운 다음 와인이나 무화과 등 달콤한 맛이 나는 소스를 곁들이는 일반적인 푸아그라 요리법과 차이가 있다. 푸아그라를 찌면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맛이 담백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간장을 소스로 사용한 것은 푸아그라의 비린내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근 무 은행 등 알록달록한 채소를 쪄서 곁들여 먹는 재미에 보는 재미를 더했다.

마지막으로 ‘유자 거품과 간장버터소스를 곁들인 훈제 메로’가 나왔다. 메로를 훈제해서 팬에 굽고 간장과 버터를 섞은 소스를 뿌린 뒤 유자 거품을 얹었다. 혀에 닿는 동시에 연기를 들이마신 듯 알싸한 향이 났다. 매캐했던 느낌이 가라앉을 즈음 간장버터소스의 짭짜름하면서 부드러운 맛과 싱그러운 유자 향이 올라왔다.

간장버터소스가 탄생한 과정이 재미있다. 최 셰프가 어느날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간장을 넣어 만든 소스와 마요네즈가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돌아오자마자 간장과 버터를 섞어 보니 역시나 기막힌 맛이 났다고 한다.

엘본 더 테이블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3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다양하다. 평일에는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직장인이 많고 주말에는 20~30대 연인들이 주로 찾는다. 홀 좌석 57개 외에 적게는 5~6명에서 많게는 2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네 개 있다. 재계 10위권의 대기업 오너도 그 방의 단골 중 한 명이다. 옥상에는 ‘엘본 더 가든’이라는 정원이 있어 한겨울만 아니면 최대 50명이 모여 바비큐 파티를 열 수 있다.

최현석 총괄셰프 “노동자→기술자→예술가…진짜 요리사가 되는 과정”

흑과백, 접시 위 예술가의 손맛 체험…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
“요리사는 궁극적으로 예술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현석 엘본 더 테이블 셰프(42·사진)는 “계속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남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까지 1000가지가 넘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최 셰프는 “요리사는 처음엔 노동자”라는 말로 시작했다. 요리를 시작한 뒤 일정 기간은 ‘몸으로 때우며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기술자’가 된다고 한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할 수 있게 되고 비용도 따져가며 음식을 만들 만큼의 노련함이 생긴다는 의미에서다.

마지막 단계가 예술가다. 최 셰프는 “요리사는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라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창의적인 요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셰프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요리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처음엔 선배들에게서 배운 요리를 좀 더 잘 만드는 데 치중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블로그에서 “음식이 맛은 있는데 라쿠치나랑 비슷하다”는 레스토랑 이용 후기를 읽었다. 라쿠치나는 20여년 전 그가 요리를 처음 배운 곳이다.

그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며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최 셰프는 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대신 ‘요리사의 피’를 타고났다. 부모님과 형이 모두 요리사다. 라쿠치나에도 형의 소개로 들어갔다. 그는 “앞으로도 세상에 없는 새로운 요리를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위치 서울 강남구 신사동 530의 5 (02)547-4100
●메뉴 노블 디너 세트 7만5000원, 엘본 디너 세트 9만5000원, 셰프 시그니처 세트 13만5000원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11시

글=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사진=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