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파행으로 새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이 늦춰지면서 취약계층에 돌아가야 할 하루 평균 28억원의 예산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다. 관련 법안이 지난해 5월 일찌감치 국회에 상정됐지만 야당이 기초연금 정부안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주장들을 잇따라 들고 나오면서 국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대표적인 취약계층 지원 법안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1년 넘게 국회 통과가 미뤄지면서 올해 비수급 취약계층 37만명에게 지급할 5개월치(오는 10월~2015년 2월) 예산 4400억원은 물론 내년 상반기 일부 예산도 집행이 불가능해졌다.

개정안의 핵심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개별 급여체계로 바꿔 40만명의 신규 대상자에게 월평균 6만원씩 지원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 문제는 이 예산을 안 쓰고 넘긴다고 해서 소급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에서 통과가 됐더라면 취약계층이 받아갈 수 있었던 돈이 그대로 국고(國庫)에 남아버린다는 얘기다. 올해 미집행 예산을 하루치로 환산하면 28억원 상당에 달한다.

임호근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당장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시스템 구축 등 실제 지급하는 데까지 5~6개월은 더 걸린다”며 “지급시스템을 미리 만들어놓으려고 해도 법안이 통과돼야 시스템 예산을 받을 수 있어 준비 기간을 5개월 내로 단축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당초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으로 새로 지원받게 될 취약계층은 올 하반기에만 17만명이었다. 내년 1월부터 추가로 포함하기로 했던 수급자 20만명까지 합치면 취약계층 37만명이 내년 초에 새롭게 정부의 사회안전망 안에 들어와야 했다. 여기에 기존 기초생활수급자 135만명이 받을 수 있는 월평균 수급액도 42만4000원(1인가구 기준)에서 43만8000원으로 1만4000원 오를 예정이었지만 이 또한 연내 적용이 무산됐다.

만약 9월에도 국회 통과가 무산될 경우 새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3월을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