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그룹기획실장 겸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임명한 것을 비롯 일부 경영진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은 서둘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분기 창사 이후 처음으로 1조원이 넘는 영업 적자를 낸 데다 노조가 19년 만에 파업 움직임을 보이면서 노사 관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연말 정기 인사시즌을 불과 석 달여 앞둔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경영진 인사를 단행한 것은 그만큼 그룹 사정이 급박하다는 판단에서다.

현대重 '구원투수' 권오갑, 그룹기획실장도 맡는다
현대중공업은 최길선 회장과 권 사장의 ‘투톱 체제’로 지금의 위기를 정면 돌파할 계획이다. 권 사장은 지난달 현업에 복귀한 최 회장과 함께 현대중공업은 물론 그룹 계열사 경영 전반을 챙기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2분기에 1조1037억원의 영업 손실을 내자, 회사를 글로벌 1위 조선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인 최 회장을 다시 불러들였다. 새로운 성장을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그룹 경영 전반을 지휘했던 이재성 회장은 상담역을 맡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권 사장은 계열사 경영 전반을 챙기게 된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 내부 조직이던 기획실을 ‘그룹기획실’로 확대 개편했다. 현대중공업은 앞으로 주주총회를 열어 권 사장을 대표이사에 선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그룹 경영을 쇄신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것”이라며 “효율적인 경영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기획실을 그룹기획실로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 사장 발탁과 관련,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지내면서 발휘해온 경영수완을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안다”며 “그룹 위기 탈출의 선봉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탁의 배경에는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의 두터운 신망도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권 사장은 1951년생으로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런던사무소 부장·서울사무소장(부사장) 등을 거쳐 2010년부터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일해 왔다.

권 사장은 현대오일뱅크를 2011년부터 3년 연속 정유사업부문 이익률 1위 기업에 올려놓았고, 올 상반기에도 국내 정유 4사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일궈냈다. 높은 고도화 비율, 생산원가 절감 등을 통해 SK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경쟁사보다 규모가 작지만 내실이 탄탄한 회사로 키워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권 사장은 당장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수익성 제고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부진한 조선 업황 탓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노사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중공업은 19년 동안 노조 무분규 기록을 써왔으나 최근 파업 위기에 내몰려 있다. 노조는 △통상임금 확대 △기본급 6.51% 인상 △성과급 250%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등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오는 1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 찬반투표 일정 등을 정할 예정이다.

한편 권 사장 후임으로 현대오일뱅크 대표에 내정된 문종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 상무를 거쳐 그동안 현대오일뱅크 경영지원본부장(전무) 및 기획조정실장(부사장)을 맡아왔다. 1957년생으로 연세대를 졸업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