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旗는 불명예 아닌, 들어야 할 깃발…모두가 백기를 안드니 싸움 일어나"
“세상에선 싸울 때 항복하는 깃발인 백기(白旗)를 불명예로 생각하지만 백기야말로 우리가 들어야 하는 깃발이에요. 세상 사람 전부 백기를 안 들려고 하니까 싸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고은 시인(81·사진)은 15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평화친선대사로 위촉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둘러싼 한국 사회 갈등의 해법으로 ‘양보’를 꼽았다. 평화친선대사 위촉 소감에 대해선 “서정시인으로 사는 것만 아니라 조국의 미래와 동아시아 갈등 구조를 풀기 위해 시간을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 고 시인은 앞으로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대표해 유네스코의 평화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게 된다.

고 시인은 “등단하기 전 6·25전쟁 직후 산중에 있다가 서울에서 글을 몇 편 발표했는데 유네스코 살림을 꾸리던 조동제 선생이 그 글들을 보고 유네스코 장학금으로 프랑스 유학을 가지 않겠냐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며 “그때 파리에 갔다면 어느 대학에서 살다가 포도주나 마시다 정년을 맞았을지 모르겠지만 조 선생의 청을 사양했다”고 옛 추억을 꺼냈다.

이날 자신이 쓴 ‘유네스코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한 고은 시인은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이 평화를 지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커다란 평화 의지를 실현할 만한 존재일까 스스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며 “그동안 평화 연작시를 국제 시단에 알려왔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