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이사회가 임영록 회장에 대해 사퇴권고를 결정해 KB 사태는 임 회장의 자진사퇴만 남겨놓은 모양새가 됐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어제 긴급간담회에서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내일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해임안을 의결하겠다니 반전 여지도 없다.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고, 우군이던 이사회마저 등을 돌려 임 회장은 더 버티기도 어렵게 됐다. 당장 KB금융과 10개 계열사는 금감원 감독관이 파견돼 시시콜콜 간섭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사태 원인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내홍, 중징계, 직무정지, 검찰고발, 사퇴권고로 이어진 4개월이었다. KB가 얻은 것은 오명이요, 잃은 것은 신뢰다. 새 경영진을 구성한다 해도 봉합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분은 한 주도 없으면서 은행을 좌지우지해온 정부당국에 더 큰 책임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2008년 KB금융 출범 이래 회장과 행장이 모두 낙하산이었고, 멀쩡히 임기를 마친 CEO가 없는 이유를 KB 내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KB사태는 한국 금융사에서 낙하산과 주인 없는 관치구조가 빚어낸 대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금융이 이 지경이 된 데는 환란 이후 16년간 정부가 메가뱅크, 금융허브 등 헛구호만 남발한 것과 무관치 않다. 기초 부실로 바닥이 꺼지는 줄도 모른 채 허황된 설계도만 그려댄 부작용의 결정판이 바로 KB사태다. 애초에 은행합병·대형화의 전제였던 은행과잉(오버뱅킹)론이 맞기나 했는지도 의문이다.

차제에 금융지주 이사회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이사회의 사퇴권고 자체도 관치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금융위원장이 KB 이사회 의장을 만나 임 회장 사퇴에 ‘이사회의 역할’을 요청했다는 뻔한 줄거리다. 이사회는 명목상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지만, 그 권한을 주주로부터 위임받은 게 아니다. 주로 관변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지금 같은 구조에선 관치의 수단에 불과하다. 부실 정책, 부실 감독도 함께 손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