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독과 내공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중 ‘그늘에 대하여’라는 수필집이 있다. 수필집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글 중 하나가 ‘손님을 싫어함’이다. 작가는 손님이 찾아와 형식적으로 수다를 떠는 시간을 혐오한다. 대신 고독이야말로 자아를 성장시키는 양분이라고 믿는다.

혼자만 있는 사람은 우울해지기 쉽다. 이 작가처럼 고독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혼자 있는 시간 책을 읽고, 하늘과 땅과 나무를 보며 사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에는 사사로운 것에 흔들리지 않는 자아의 내공이 필요하다. 자아가 단단하지 않으면 혼자 있는 시간 속엔 잡념만 찾아오기 십상이다.

우리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까닭도 잡념 때문이다. 잡념이란 대개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스스로를 나약하게 하는 자책인 경우가 많다. 왜 너는 그토록 인생을 허비했는가, 나는 왜 재산도 많이 모으지 못했을까, 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은 너의 성격 탓 아닐까. 이런 질문 가운데에는 내 존재의 위기를 함축하고 있는 것들이 종종 있다. 내공이란 그런 질문을 마주보는 힘이다. 이런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보통 자책의 늪에 빠져 버린다. 후회가 힘이 되지 못한다면, 자책은 자멸의 파괴력으로 바뀌고 만다.

그래서 나약한 우리들은 대개 혼자보다 사람들 속에 섞이기를 바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곤란해지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 부족한 자아의 에너지를 메우려고 한다. 내면의 힘을 길러내면 좋지만 대부분 자아가 강하지 못하다.

그런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양면적이다. 만나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고 위안을 얻을 때도 있지만 또 다른 사회적 가면을 꺼내 연기해야 하는 피곤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다니자키가 싫어한 손님도 아마 이런 가면을 요구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맨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외로움의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친구마저 가면을 요구할 때, 맨 얼굴의 내 상처를 약점으로 알고 우습게 볼 때, 만남은 오히려 자아를 더 가난하게 한다.

가면을 벗고 만날 수 없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세상 살기의 고단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노동의 시간에 불과하다. 그럴 땐 되레 혼자 있는 시간이 자아의 힘을 북돋워 준다.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이번 가을엔 내공을 길러 보는 건 어떨까.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