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멘탈 甲
“저는 몸집이 작아서 다른 선수보다 더 많이 연습하고 더 많이 몰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정신을 최대한 집중하려 애를 쓰죠.”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스타 아지 스미스의 말이다. 골든글러브를 13번이나 거머쥔 그는 ‘오즈의 마법사’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키 162㎝의 왜소한 체격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멘탈(mental) 훈련’이었다.

멘탈은 정신이나 마음을 뜻하는 단어로 독일어와 스페인어로는 멘탈, 프랑스어로는 망탈로 표기한다. 영어로는 멘털이 맞지만 한국에서는 멘탈로 굳어져 여러 용도로 쓰인다. 주로 정신력이나 심지(心志)를 뜻하는데 ‘멘탈이 강하다’ 등으로 활용된다. 인기 개그 코너의 제목에도 ‘멘탈 갑(甲)’이 등장하고, ‘멘붕(멘탈붕괴)’이란 말은 일상어로 자리를 잡았다. 심지가 굳은 것은 강철 멘탈, 약한 것은 유리 멘탈이라고 한다. 가장 강한 것은 멘탈 갑, 가장 약한 것은 쿠크다스 멘탈 혹은 두부 멘탈로 표현한다.

스포츠에서도 정신력의 대체어로 멘탈이란 말을 많이 쓴다. 육체나 물질을 의미하는 피지컬(physical)의 반대 개념으로 선수의 판단력과 평정심 등을 가리킨다. 어느 종목이든 빛나는 선수들은 거의 다 멘탈 게임의 승자다. 프로끼리의 기량 차이는 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부는 멘탈에서 갈린다. ‘피겨 퀸’ 김연아를 비롯해 ‘골프 여제’ 신지애 박인비 등도 멘탈 최강자다.

엊그제 에비앙챔피언십에서 ‘메이저 퀸’이 된 김효주도 그렇다. 첫날 61타로 남녀 통틀어 메이저대회 최소타 신기록을 세운 그가 엄청난 중압감을 이기고, 막판 역전까지 허용하면서도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강한 멘탈이었다. 김효주는 17번 홀 두 번째 샷에서 어이없는 뒤땅치기로 그린을 놓치고도 침착하게 어프로치샷을 붙여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마의 18번 홀에서 기적을 일궈낸 것도 그의 ‘강심장 샷’이었다.

골프는 대표적인 멘탈 게임이다. ‘멘탈이 반’ ‘심칠뇌삼(心七腦三)’ 등의 명언처럼 평정심을 잃으면 바로 무너지는 게 골프다. 트러블 샷이나 결정적인 퍼팅 때는 더 그렇다. 샷할 때보다 심리적으로 집중할 때 체력 소모가 더 많다. 김효주의 놀라운 멘탈 앞에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백전노장 캐리 웹도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캐디와 함께 걸어갈 땐 생글생글 웃는 열아홉 소녀의 ‘강철 멘탈’이야말로 진정한 메이저급이라 할 만하다. 가난한 시절의 ‘악바리 정신’보다 훨씬 품격 있고 보기에도 좋으니 더욱 흐뭇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