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내일 뉴욕증시 상장 250억弗 잭팟…마윈 회장의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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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파리의 IT이야기]
서른에 접한 인터넷 "돈 된다" 직감…'양쯔강의 악어' 글로벌 거인 되다
영어에 미친'싸움닭'
어릴 적부터 영어배우기 즐겨
외국인 보면 달려가 "헬로"
미국서 받은 인터넷 충격
만능 검색 도구 "바로 이거다"
귀국 즉시 인터넷 회사 창업
중국 진출한 이베이 격파
'수수료 공짜'로 밀어붙이기
이베이 결국 중국서 밀려나
김광현 IT전문기자 kwang82.hankyung.com
서른에 접한 인터넷 "돈 된다" 직감…'양쯔강의 악어' 글로벌 거인 되다
영어에 미친'싸움닭'
어릴 적부터 영어배우기 즐겨
외국인 보면 달려가 "헬로"
미국서 받은 인터넷 충격
만능 검색 도구 "바로 이거다"
귀국 즉시 인터넷 회사 창업
중국 진출한 이베이 격파
'수수료 공짜'로 밀어붙이기
이베이 결국 중국서 밀려나
김광현 IT전문기자 kwang82.hankyung.com
약 40년 전 중국 항저우에 독특한 꼬마가 있었다. 키가 작고 삐쩍 말랐는데도 덩치 큰 아이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싸움닭’ 같았다. 이 아이는 영어 배우길 좋아해 외국인이 눈에 띄면 다짜고짜 달려가 “헬로!” 하며 말을 걸었다.
열 살 무렵엔 외국인에게 영어를 배우려고 매일같이 시내 호텔로 달려가곤 했다. 외국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무료로 시내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 용돈을 모아 라디오를 산 적도 있다. 영어만큼은 누구보다 잘했다. 그러나 수학을 잘 못해 대학입시에 두 차례나 낙방했다.
그는 사범대에 진학해 영어를 공부했다. 졸업 후엔 다시 시련이 닥쳤다. 취업하려고 여기저기 지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KFC 점원에도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결국 대학 영어강사로 취업했다. 말이 강사지 월급은 12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인터넷 접하고 창업 결심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에 관한 이야기다. 마 회장은 1999년 수출업자와 해외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알리바바닷컴을 설립했다. 중국의 선구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다. 바로 이 알리바바가 19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주식을 상장한다. 기업공개 규모가 250억달러(약 25조9000억원)로 역대 최대다.
마 회장의 알리바바 창업은 미국 방문에서 시작됐다. 서른 살 때인 1994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미국인 친구 사무실에서 인터넷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친구는 “이것이 인터넷이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 회장은 검색창에 ‘beer(맥주)’를 입력했다. 많은 정보가 떴다. 그러나 중국어 검색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마 회장의 남다른 점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검색 결과를 본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기로 마음 먹은 것. 그는 귀국하자마자 ‘차이나 페이지스’라는 인터넷 회사를 차렸다. 중국 수출업자 목록을 작성해 해외 바이어와 연결해주는 사이트였다. 그는 직접 자료를 모으고 영어로 번역하는 등 몸으로 뛰었다.
○창업할 때부터 ‘글로벌 기업’ 지향
첫 인터넷 회사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돈을 벌지 못했다. 결국 회사를 접고 베이징으로 가서 회사원이 됐다.
그러나 창업하고 싶은 욕구를 견디지 못해 항저우로 내려가 1999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1999년은 한국에서 네이버가 출범한 해다. 알리바바는 현재 기업가치에서 네이버의 일곱 배가 넘는 기업이 됐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1999년은 실리콘밸리에서 ‘닷컴 버블’이 한창 꺼지고 있을 때였다. 이런 시점에 창업한다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마 회장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공동 창업자 17명에게 창업 취지를 설명했다. 알리바바 성공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양쯔강의 악어’를 보면 마 회장은 처음부터 ‘글로벌 웹사이트’를 지향했다.
이날 발언 요지는 이렇다. “우리 경쟁 상대는 중국 기업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이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정확히 퇴근하는 자세로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하려거든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낫다. 우리한테는 머리가 있고 강한 정신력이 있다.”
○‘수수료 공짜’로 밀어붙여 이베이 꺾어
마 회장의 적극성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어느 날 실리콘밸리 카페에서 알리바바를 회사명으로 택하려고 마음 먹고 종업원에게 “알리바바를 아느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다. “무얼 아느냐?”고 물었다. “‘열려라 참깨’를 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 행인 20여명을 붙잡고 물어봤다. 다들 알리바바를 안다고 답했다. 그래서 회사명을 알리바바로 지었다.
마 회장의 ‘싸움닭’ 근성은 이베이와의 싸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알리바바는 이베이를 꺾기 위해 ‘수수료 공짜’를 기치로 내걸었다. 개인 간 거래를 중개해주는 게 사업인데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베이가 투자자들의 성화 때문에 ‘수수료 공짜’로 맞대응할 수 없다는 걸 간파한 전략이었다. 결국 이베이는 알리바바에 져서 밀려났다.
알리바바는 뉴욕 증시 상장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국 내에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해외에서도 깃발을 날리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wang82.hankyung.com
열 살 무렵엔 외국인에게 영어를 배우려고 매일같이 시내 호텔로 달려가곤 했다. 외국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무료로 시내 관광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 용돈을 모아 라디오를 산 적도 있다. 영어만큼은 누구보다 잘했다. 그러나 수학을 잘 못해 대학입시에 두 차례나 낙방했다.
그는 사범대에 진학해 영어를 공부했다. 졸업 후엔 다시 시련이 닥쳤다. 취업하려고 여기저기 지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KFC 점원에도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결국 대학 영어강사로 취업했다. 말이 강사지 월급은 12달러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인터넷 접하고 창업 결심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에 관한 이야기다. 마 회장은 1999년 수출업자와 해외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알리바바닷컴을 설립했다. 중국의 선구적인 인터넷 기업 중 하나다. 바로 이 알리바바가 19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주식을 상장한다. 기업공개 규모가 250억달러(약 25조9000억원)로 역대 최대다.
마 회장의 알리바바 창업은 미국 방문에서 시작됐다. 서른 살 때인 1994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미국인 친구 사무실에서 인터넷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친구는 “이것이 인터넷이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 회장은 검색창에 ‘beer(맥주)’를 입력했다. 많은 정보가 떴다. 그러나 중국어 검색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마 회장의 남다른 점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검색 결과를 본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기로 마음 먹은 것. 그는 귀국하자마자 ‘차이나 페이지스’라는 인터넷 회사를 차렸다. 중국 수출업자 목록을 작성해 해외 바이어와 연결해주는 사이트였다. 그는 직접 자료를 모으고 영어로 번역하는 등 몸으로 뛰었다.
○창업할 때부터 ‘글로벌 기업’ 지향
첫 인터넷 회사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돈을 벌지 못했다. 결국 회사를 접고 베이징으로 가서 회사원이 됐다.
그러나 창업하고 싶은 욕구를 견디지 못해 항저우로 내려가 1999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1999년은 한국에서 네이버가 출범한 해다. 알리바바는 현재 기업가치에서 네이버의 일곱 배가 넘는 기업이 됐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1999년은 실리콘밸리에서 ‘닷컴 버블’이 한창 꺼지고 있을 때였다. 이런 시점에 창업한다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마 회장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공동 창업자 17명에게 창업 취지를 설명했다. 알리바바 성공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양쯔강의 악어’를 보면 마 회장은 처음부터 ‘글로벌 웹사이트’를 지향했다.
이날 발언 요지는 이렇다. “우리 경쟁 상대는 중국 기업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들이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정확히 퇴근하는 자세로는 이들을 이길 수 없다. 그렇게 하려거든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게 낫다. 우리한테는 머리가 있고 강한 정신력이 있다.”
○‘수수료 공짜’로 밀어붙여 이베이 꺾어
마 회장의 적극성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어느 날 실리콘밸리 카페에서 알리바바를 회사명으로 택하려고 마음 먹고 종업원에게 “알리바바를 아느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다. “무얼 아느냐?”고 물었다. “‘열려라 참깨’를 안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 행인 20여명을 붙잡고 물어봤다. 다들 알리바바를 안다고 답했다. 그래서 회사명을 알리바바로 지었다.
마 회장의 ‘싸움닭’ 근성은 이베이와의 싸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알리바바는 이베이를 꺾기 위해 ‘수수료 공짜’를 기치로 내걸었다. 개인 간 거래를 중개해주는 게 사업인데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베이가 투자자들의 성화 때문에 ‘수수료 공짜’로 맞대응할 수 없다는 걸 간파한 전략이었다. 결국 이베이는 알리바바에 져서 밀려났다.
알리바바는 뉴욕 증시 상장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국 내에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해외에서도 깃발을 날리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wang8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