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는 국내 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파생상품 계좌대여 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투자금 100만원을 날렸다. 업체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프로그램에 조작된 데이터들을 올려 놓은 것을 까맣게 모르고 투자한 탓에 이익을 내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대여계좌 업체는 김씨의 계좌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그가 사들인 파생상품을 임의로 팔아버렸다. 김씨가 피해액 환불을 요청했지만 업체 측은 이를 무시했다.

개인 투자자의 선물, 옵션 거래 자격 강화를 골자로 한 ‘파생상품 발전방안’ 시행을 앞두고 대여계좌 관련 피해 사례 보고가 늘고 있다. 정부가 신규 투자자의 파생거래 예탁금을 종전 1500만원에서 연말 전까지 3000만원으로 높인다는 방안을 발표한 후 불법 대여계좌를 활용하는 투자자가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대여계좌는 이미 예탁금을 낸 통장을 의미한다. 사설업체가 수수료를 받고 개인 투자자에게 명의를 빌려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예탁금 상향조정을 앞두고 대여계좌 거래로 의심되는 주문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의심만으로 고객의 계좌를 정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설업체를 통한 차명 파생상품 거래는 투자자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기 힘들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차명 거래 자체가 불법인 탓이다. 김씨의 사례처럼 조작된 정보를 제공받거나, 사전 고지 없이 업체가 임의로 상품을 팔아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증거금만 받고 업체가 잠적하는 사례도 있다.

증권사들도 대여계좌 거래가 골칫거리다. 증권사를 통해 정식으로 매매를 체결하지 않고, 사설업체 회원 간 손바뀜만 주선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매매’ 비중이 높은 탓이다. 하이브리드 매매가 이뤄지면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을 얻을 수 없다.

2012년 하루 평균 60조원에 달했던 파생상품 거래대금은 지난해 4분기 이후 30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예탁금 기준이 올라가면 파생 시장 규모가 더 줄어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개인들의 소액 투자 비중이 높은 옵션 시장에서는 신규 개인 투자자가 아예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취지가 좋다고 억지로 밀고나가면 어렵게 키워놓은 파생시장도 죽고, 불법 대여계좌로 인한 피해자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불법 행위가 보고된다고 제도 완화를 검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한국거래소와 함께 대여계좌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허란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