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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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묵묵히 버텨준 남편
대학때 만나
나란히 사법시험 준비
멋진 프러포즈 못받아 아쉽지만
선거 때마다 휴가 내 도와줘 큰 힘


‘얼짱’이라는 말이 毒?
완벽하게 보이려다
되레 거리감 가져
다음 선거 기다리는 ‘정치꾼’ 아닌
다음 세대 기다리는 ‘정치인’ 되겠다


‘얼짱 정치인’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후유증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 33개월여 만이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한사코 고사한 서울 동작을 지역구는 대통령 선거와 서울시장 선거 등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열세를 면치 못했던 곳이다. 나 의원이 박빙의 승부 끝에 노회찬 야권 단일 후보를 929표 차로 꺾은 것은 야당의 공천 파동으로 인한 반사 이익 덕도 있지만, ‘나경원의 힘’이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지난 17일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갈비집 ‘백제231’에서 나 의원을 만났다. 그는 서울시장 보선 패배 후 야인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정치 인생을 되돌아보고 ‘내공’을 다질 수 있었다고 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진 것보다 ‘1억 피부과’ 논란과 비방으로 상처를 받았고 섭섭함도 품었다”며 “길게 보면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선 후 그는 주위의 예상과 달리 중앙 정치와 일정 거리를 두고 지역구를 열심히 챙기고 있다. 그는 “힘겹게 소프트랜딩(연착륙)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32년 된 갈비집과의 인연

판사 출신으로 이회창 대선 후보 특보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엘리트 정치’의 길을 걸었던 나 의원은 이제 ‘정치 인생 2라운드’의 출발점에 섰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에다 여당 내 유일한 3선 여성 의원인 그는 벌써부터 당권 및 차기 대권주자 후보로 거론된다. 그렇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나 의원은 “이제는 국민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소소한 것부터 챙기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에둘러 표현했다.

갈비집 백제231은 바쁜 선거운동 기간에 갈비탕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려고 자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단골이 됐다. 언덕이 많은 지역 특성 때문에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강행군을 할 때 이 집 갈비탕이 ‘에너지의 원천’이 됐다고 했다. 나 의원은 스스로를 ‘고기 마니아’로 부른다. 고기가 듬뿍 들어간 설렁탕, 갈비탕, 곰탕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바빠서 갈비탕만 먹던 그는 우연히 돼지갈비를 시켰다가 그 맛에 반했다. 이날도 “이 집은 무조건 돼지갈비”라고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나 의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임은규 사장(32)이 달려와 따로 주문이 없었는데도 돼지갈비를 내왔다. 나 의원이 갈비 한 대를 집어 들어 불판에 살짝 올렸다.

그는 “달달한 고기 소스만큼이나, 아버지의 대를 이어 32년째 같은 자리에서 갈비집만 고집하는 임 사장의 모습이 좋았다”며 “(임 사장이) 대한민국 젊은이의 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나 의원은 선거 이후 계속된 지역구 일정 등 강행군에다 환절기 감기에 걸려 다소 초췌한 모습이었다. 식사 도중 그는 지난 동작을 보선에 출마하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그는 올초까지 중구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하면서 20대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은 갑작스럽게 수원에 출마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싸워줄 것을 요청했다. ‘딱’ 잘라 거절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사람이 뜬금없이 수원에 가서 전 경기지사와 맞붙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당은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동작을 출마를 거절하자, 다시 ‘나경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나 의원은 “대타 성격이라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수원과 달리 당의 어려움을 외면하면서 끝까지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가정이나 정치나 ‘스킨십’이 중요

나 의원은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장판사인 남편 김재호 씨와의 30년 러브 스토리를 살짝 공개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친 1983년 만나 1988년 11월에 나란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백수 부부가 됐다. 그는 여동생이 먼저 결혼을 선언해 멋진 프러포즈도 받지 못하고 갑작스레 결혼했다며 아쉬워했지만, 30년 세월 동안 남편은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버팀목’이 돼 줬다고 했다. 그가 선거에 출마하면 남편은 항상 휴가를 내 도와줬다. 하지만 이번엔 갑작스러운 출마여서 한두 달 전 잡힌 재판기일을 바꾸지 못해 선거를 적극적으로 돕지 못했다. 나 의원은 “(남편이) 아직 공직에 있어 정치를 직접하는 것에 대해선 익숙하지 않지만 바쁜 재판기일 중에 반나절 시간을 내 유세를 도왔다”며 흐뭇해 했다.

33개월간의 야인 생활 동안 나 의원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가족 간엔 대화가 중요한데 엄마는 너무 바쁜 것 같다”며 건넨 딸 유나의 핀잔이 정치인 생활 내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했다. 서울 용산에서 중구로, 다시 동작구로 바삐 이사를 다닌 정치인 엄마를 둔 탓에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털어놨다.

그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이들과 스킨십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자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아주고 한참 ‘두런두런’ 얘기한 뒤 잠에 드는 것은 부족한 스킨십을 채우려는 그만의 방식이다. “자더라도 본능적으로 스킨십은 느낄 수 있지 않나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야인으로 돌아간 나 의원은 대학생이 된 유나 씨와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해 쉬는 동안 어릴 적 배우다 만 기타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으로 드럼을 전공하는 딸과 합주하기 위해 딸 친구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배웠는데 아직 완벽하게 치진 못한다”고 웃었다. 언젠가는 딸과 합주를 하고 싶은 게 소원인데 너무 못해 안 끼워준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결국 정치도 ‘엄마 마음’이 필요하다”며 “자식과 가족을 대하는 이런 엄마 마음으로 지역 주민과도 스킨십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해 선거 기간 내내 강조했고 지금도 열심히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정치꾼보다는 정치인 되고파

익는 고기와 함께 대화가 무르익자 나 의원이 술을 한 병 시켰다. 감기에 걸렸음에도 이 집에 오면 이 술은 꼭 한잔 마셔봐야 한다고 추천했다. 임 사장 아버지가 직접 담근 ‘산삼주’였다. 그는 “가끔씩 산양산삼주를 마시면 심한 감기도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수제 술”이라고 말했다.

나 의원이 2002년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따라다닌 꼬리표는 이른바 ‘얼짱 정치인’이다. 뛰어난 미모는 정치 입문 초기에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을 뿐, ‘독(毒)’이 될 때가 많았다.

나 의원은 “항상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완벽하게 보이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며 “아파도 안 아픈 척, 피곤해도 안 피곤한 척하다 보니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나 의원은 고기가 행여 탈까 한 점, 한 점 열심히 고기를 뒤집었다. 그러면서도 최근 파행으로 치닫는 정치권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정치가 추구하는 것과 현실은 같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O·X퀴즈가 아닌데, 요즘 여야는 둘 중 하나 정답만 찾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공전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서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 의원은 “폭력 국회를 막고자 하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내 편과 남의 편으로 갈려 서로 O냐 X냐를 가르는 탓에 합의 처리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지도부에 의해 의원들이 돌격대가 되거나 도구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도부 몇몇이 결정하는 공천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서울시장 선거 패배 등 좌절을 겪고 난 뒤 ‘정치인’과 ‘정치꾼’의 차이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차이를 묻자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기다리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기다린다’는 정치 격언을 들려줬다. 나 의원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엄마로 살아와서 그런지 차기 선거보다는 우리 미래 세대에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정치인 나경원의 최종 꿈”이라고 말했다.
■ 나경원 의원의 단골집 백제231
2~3일 전에 재워 놓은 ‘돼지 왕갈비’ 일품

서울 사당동 ‘백제231’은 1983년 ‘백제갈비’라는 상호로 시작해 32년째 돼지갈비, 갈비탕을 전문으로 해온 음식점이다. 아버지 임재용 씨 뒤를 이어 2007년부터는 아들 임은규 사장이 가업을 잇고 있다.

나 의원이 자주 먹는 ‘돼지 왕갈비’는 2~3주에서 길게는 한 달 전에 만든 소스로 재우는 체인 갈비집과 달리 판매 2~3일 전에 재워 놓은 것을 내놓는다. 건강을 생각해 설탕 대신 배, 사과, 키위 등을 일정 비율로 혼합해 맛을 내 적당히 달달하면서도 끝 맛이 고소하다.

나경원 의원이 올 때마다 한 그릇씩 비우고 간다는 갈비탕은 여느 음식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마구리 살이나 양지를 전혀 넣지 않고 소갈비를 통째로 가져와 직접 잘라 만들어 갈비탕 본연의 맛을 살렸다.

돼지 왕갈비는 1인분(300g) 1만4000원, 소 생갈비는 1인분(270g) 2만7000원. 갈비탕은 한 그릇에 9000원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밤 12시. (02)537-0660

■ 나경원의 핵심공약…‘강남 4구 프로젝트’

나경원 의원은 최근 지인을 만날 때마다 “동작을 지역 집을 사라”고 권하고 있다. ‘굴러온 돌(지역구를 옮긴)’ 나 의원은 지역구 부동산 값만 끌어올리면 재선은 ‘떼놓은 당상’이다. 그의 핵심 공약인 ‘강남 4구 프로젝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정보사 터널(장재터널) 조기 개통’이다. 지난 20년 동안 선거 때마다 불거졌지만 실현된 적이 없는 공약(空約)이기도 하다. 나 의원은 “터널이 개통되면 강남과의 접근성이 높아져 집값은 저절로 올라간다”며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 나경원 의원 약력

1963년 서울 출생
1986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92년 34회 사시 합격
1995~2002년 부산·인천지법, 서울행정법원 판사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정책특보
2004~2011년 17, 18대 국회의원
2014년 19대 국회의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