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고령화 사회 진입
정년연장해 연금부담 줄이고 재정건전성도 높여야
생산력 부족 해결 위해선 여성인력도 제대로 활용해야
오는 11월4~6일 서울 광진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4’의 주제는 ‘신뢰와 통합의 인재’다. 세이케 아쓰시 게이오대 총장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뢰와 통합의 인재는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세이케 총장은 “신뢰란 논리와 실증성에 근거한 과학적 사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지적 기반에서 자란다”며 “게이오대 창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를 ‘실학(實學)한다’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의사소통하는 것이 신뢰 구축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는 그가 생각하는 대학교육의 역할과도 부합한다.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의사소통하는 훈련을 통해 정부·사회·개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저출산·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계층 간 갈등과 불신이 커지고 있는데 신뢰를 쌓아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앞으로 한국·일본의 교육과 고용 제도는 노동자의 능력을 최대한 높이고, 높아진 능력을 낭비없이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노동경제학자인 그가 내놓은 개념이 ‘생애 현역 사회’다. 일할 의사와 능력만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65세 이상으로 정하되, 그 시기를 넘겨서도 일하기를 원하면 임금피크제 등을 적용해 사회적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이케 총장은 ‘글로벌 인재포럼 2014’에 참석해 5일 기조세션Ⅱ(미래의 대학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다음은 세이케 총장과의 일문일답.
▷저성장 시대에 고용을 두고 세대 간 갈등이 치열하다.
“청년 일자리와 고령자 고용은 이율배반 관계가 아니다. 고령자 고용이 젊은이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생각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리포트에서도 실증적으로 부정됐다. 오히려 고령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젊은이에게 제대로 이전해 나가면서 양측 간 윈-윈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갈등의 해결책으로 ‘생애 현역 사회’라는 개념을 내놨다.
“인구 고령화 단계에서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하려면 현역 노동자의 부담을 늘리거나, 사회보장 급부를 줄이거나, 고령자 고용을 늘려 현역 기간을 연장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 가운데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고령자 고용이다. 노동력 부족을 겪는 시장에서 일할 의사와 업무 능력이 있는 고령자의 취업을 장려할 수 있다. 고령자가 지속적으로 근로소득을 올리면 높은 소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 수요 측면에서의 성장 역시 촉진할 수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인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령자 고용 촉진의 필요성을 기업이 먼저 강조하고 있다. 또 생애 현역 사회가 실현되면 연금 지급 등 정부의 사회보장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남는 재원을 기업들의 고용비용 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생애 현역 사회는 고령자에게만 해당하나.
“그렇지 않다. 생애 현역 사회의 기본 개념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노동력을 발굴하는 것이다. 여성 인력이 대표적이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노동력이 부족해지는데, 이를 상쇄할 생산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대학을 졸업한 여성 한 명이 전업주부가 될 경우, 직장생활을 한 뒤 정년퇴임하는 여성보다 평생 2억5000만엔의 기회비용이 사라진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회적 순손실로 이어진다. 이제는 남자가 직장을 다니고 여자가 가정을 돌보는 이분법적 사회가 아니라 남녀가 모두 일과 가정을 아우르는 시대다. 보육·교육·기업 투자 등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해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도 생애 현역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생애 현역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
“현재 한·일 양국 모두 큰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기술과 시장이 급변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검증해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게이오대 창립자 후쿠자와 유키치가 강조한 ‘과학의 방법론’이다. 꼭 강의실에서 배우지 않아도 좋다. 예컨대 야구경기를 보면서 어떤 전략을 써야 이길 수 있을지, 얼마만큼의 경우의 수가 있을지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하는 훈련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대학과 사회의 역할이다.”
▷일자리 갈등뿐 아니라 소득 양극화에 따른 계층 갈등도 심하다.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바로 교육이다. 높은 교육을 받으면 출신 가정에 관계없이 높은 소득을 올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출신 집안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면에서, 오히려 소득 격차를 확대할 우려도 있다. 때문에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학금 제도 등을 충실히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이케 아쓰시 게이오대 총장은…
△1954년 도쿄 출생 △1978년 게이오대 경제학부 졸업 △1983년 게이오대 경제학 박사 △1987년 일본 노동경제학회 연구상 수상 △1995년 일본 내각부 주택·인구정책 전문위원 △1997년 일본 내각부 경제심의회의 특별위원 △2008년 일본경제학회 이사 △2009년 게이오대 총장 △주요 저서 ‘고령자의 노동경제학’ ‘인사조직론’ ‘보육정책론’ ‘초단카이세대’ ‘정년파괴’ 등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