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식 홍익대 미대 교수(56·사진)에게 ‘여행’은 인생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그는 다음달 31일까지 서울 정동 청안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본 보야지!(즐거운 여행 되세요)’에서 그 화두를 캔버스에 풀어냈다.
그의 작품에는 20~30대 파리 유학 시절과 유럽·미국 여행의 기억이 녹아 있다. 홍익대 회화과 77학번인 그는 졸업 후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 회화과와 파리 제8대학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공부했다. 전 세계 요새 100군데와 성당 200여곳을 직접 발로 찾았다. 유학시절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수도원에 틀어박혀 지내기도 했다. 당시 경험을 통해 책 안에 갇혀 있던 미술 용어를 눈으로 확인하며 익혔다.
신 교수는 유학시절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겪었다. 1984년께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연 ‘발그리기 공모전’에서다. 한 달간 1호짜리 캔버스 10점에 발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 내는 대회였다. 1등에겐 당시 유명 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기회를 줬다. 그의 손재주는 교내에서 유명했다. 주변에서 “신종식이 1등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예수, 부처 등 문명사에 기록된 인물 10명의 발을 그려냈다. 결과는 131명 중 130등. 지도교수는 신 교수에게 “피부를 열고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손재주로 그리는 방식이 현대미술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캔버스에는 그의 기억 속 다양한 형태로 축적된 기호들이 배치돼 있다. 나무, 성, 마을, 십자가, 천사와 악마, 나침반 모양의 도상이 그려져 있는데 선과 색이 매우 간결하다. 그의 작품에는 홀로 걸어야 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외롭지만 쓸쓸하진 않은 길이다. (02)776-5105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