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성서' 바흐…엔더스 "제겐 운명, 사명감 같은 게 있죠"
세기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1876~1973)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고서점에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발견한 것은 그의 나이 13세 때였다. 그는 12년 동안 매일 이 곡을 연습했지만 25세가 돼서야 비로소 공개석상에서 연주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갖게 됐다고 했다.

카살스가 처음 사람들에게 바흐를 들려줬던 때와 비슷한 또래의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26·사진)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첼리스트들에게 ‘성서’로 통하는 바흐의 이 작품을 음반으로 내놓은 것. 카살스는 물론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미샤 마이스키, 피에르 푸르니에 등 수많은 거장이 6곡으로 이뤄진 이 작품을 음반으로 냈다.

22일 서울 중림동에서 만난 엔더스는 “나는 바흐와 함께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며 “운명,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가 이 음반을 낸 것에 어떤 사람은 ‘너무 이르다’고 할지 몰라요. 하지만 50세가 돼서도 빠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요. 지금 이 음반을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엔더스는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독일인 아버지와 작곡가인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자랐다. 그의 이름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에게서 따온 것. 9세에 첼로를 처음 접한 그는 12세에 프랑크푸르트 음대에서 미하엘 잔덜링을 사사했다. 2008년에는 1548년 창단한 독일 최고(最古)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에 첼로 수석으로 입단했다. 10여년간 비어있던 자리에 역대 최연소 수석 연주자를 받아들인 것.

하지만 그는 2012년 더 많은 경험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떠나 독주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를 연주할 기회가 적어진 것은 아쉽다”면서도 “이전보다 많은 자유가 생겨 연주 스타일이 보다 자유로워졌다”는 설명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독립 이후 그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오케스트라를 떠난 뒤 한동안 수도사 같은 생활을 했어요. 이 곡을 연주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질문했죠. 바흐의 이 작품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있어요. 저 자신도 다양한 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엔더스는 내년 8월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함께 베토벤이 남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을 연주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저희 둘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예요. 그동안 한국 청중에게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으니 당분간은 여기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음반 발매를 기념해 오는 24, 25일 이틀에 걸쳐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한다. 24일에는 1·5·4번, 25일엔 3·2·6번을 들려줄 계획이다. 이어 29일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내달 1일 경기 오산 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2일 대구 시민회관 챔버홀에서도 연주회를 연다. 서울 공연 관람료는 3만~4만원. (02)6303-1977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