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 Life Expectancy at Birth이라는 말이 있지요. 연령별, 성별 사망률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고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이 앞으로 몇 년 더 살 것인가를 통계적으로 추정한 기대치를 뜻하는데요. ‘0세에 대한 기대여명 Life Expectancy’ [특정 연령의 사람이 향후 얼마나 더 생존할 것인가 기대되는 연수]이 다른 말 입니다.

통계청의 2012년 한국인 생명표에 따르면 이 해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평균적으로 2093년까지 81.4년을 살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남자 아이의 경우 2089년까지 평균 77.9년을 살고, 여자는 평균 84.6년인 2096년까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21세기를 넘기지는 못한다는 얘기였는데요.

2012년에 만 20세, 약관의 나이에 든 1992년생 남성은 기대여명이 58.4년으로 2070년, 여성은 2077년까지 65.1년간 더 살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2012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4개 회원국의 기대수명과 비교해 더 긴 것으로 나타납니다. 남자의 기대수명은 OECD 평균인 77.3년 보다 0.6년, 여자의 경우 OECD 평균 82.8년 보다 1.9년 더 장수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전자제품에도 기대여명 Life Expectancy [소비자들이 제품을 고장 없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최대한의 기간]이 있다고 하는데요. 국내에서 이런 통계를 내는 곳이 있는 지 모르겠는데 미국에선 전미가전협회 CEA가 매년 성인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발표합니다.

오늘 2014년 9월 22일 CEA 자료를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자제품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기대여명은 평균 5년 정도란 조사입니다. 전자제품 가운데 기대여명이 가장 긴 것은 평면텔레비전 Flat Panel TV로 7.4년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음 디지털카메라 6.5년, DVD플레이어 6.0년, 데스크톱 컴퓨터 5.9년, 블루레이플레이어 Blue-Ray Player 5.8년, 비디오게임 콘솔 Console 5.7년, 노트북·넷북·랩톱 컴퓨터 5.5년, 태블릿 컴퓨터 5.1년 순입니다.
/삼성전자 갤럭시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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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폰을 비롯해 스마트폰 기능이 없는 휴대전화가 4.7년이었고 스마트폰은 4.6년으로 모든 전자제품 중 가장 기대수명이 짧다는 통계입니다. CEA측은 이번 조사를 내놓으면서 “가정에 두는 거치형 전자제품의 기대여명이 더 길고 휴대하는 제품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해석했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세계 최대급으로 불리는 미국 시장의 관련 제품 라이프 사이클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전자업계에 유용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기대여명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제품의 시장 수요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TV의 경우 가령 이런 식입니다. 미국에서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식 표준은 1990년대 중반에 제정됐습니다. 아날로그 TV방송은 최종 2009년 2월 종료됐고요. 만일 아날로그 TV방송의 종료 시기에 미국 현지에서 디지털 TV수상기가 대거 교체됐다고 가정해 본다면 2016년경 평면TV에 대한 수요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깁니다. 앞서 확인한 대로 평면TV 기대수명은 7.4년.

미국 CEA의 ‘평면TV의 기대여명’ 통계를 갖고 한 가지 더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3년 전 2011년 기준 만 20세에 이른 미국 성인들이 생애 동안 TV를 몇 번 정도 바꿀까 하는 건데요.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여덟 번 정도란 답이 나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통계청의 생명표에 따르면 2011년에 만 20세에 이른 미국 성인의 기대여명은 남성의 경우 56.3세, 여성 61.3세로 나타납니다.(7X8=56이지요. 물론 실제 TV를 교체하는 주기는 이처럼 잦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 배불뚝이 브라운관TV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엔 TV의 라이프 사이클은 10년 정도라는 게 정설로 꼽혔습니다. CEA의 이번 조사 결과는 ‘TV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기대여명도 단축됐다고 유추해 볼 대목입니다.

CEA측은 이번 조사 결과, 스마트폰의 경우 기대여명이 4.6년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제품의 교체주기는 이 보다 훨씬 짧을 거란 추정을 내놨는데요. 스마트폰은 신제품의 등장과 소비자와 통신사업자와의 계약관계 같은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실제 삼성전자나 애플은 1~2년 단위로 신제품을 내놓고 있고 통신서비스업체들의 약정 기간도 2년이 보편적입니다.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