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개혁 일환으로 전통시장에서 생닭 등 가금류 포장판매 예외를 허용하려 하자 소비자단체와 관련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착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가금육 유통체계 시스템이 전면 무력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소비자 신뢰도 저하에 따라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주장이 그 핵심이다.

정부, 생닭 등 가금육 포장판매 예외 허용 가닥

정부, 가금육 포장판매 예외 허용에 소비자단체·업계 "제정신 아니다" 왜?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통시장에서 일정 시설 등의 요건을 갖추면 생닭 등 가금육을 포장유통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기 위해 지난 4일 입법예고했다.

전통시장 내에서 식육판매업 및 식육즉석판매가공업 영업자의 포장판매 의무를 제외하는 단서 규정을 시행령에 신설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다만 ▲ 폐쇄가능한 구조이면서 구매자가 접촉하기 어려운 방식의 진열시설 구비 ▲ 식육의 온도를 -2~5℃로 유지 ▲ 표시기준을 표지판이나 라벨 등으로 표시 ▲ 얼음의 식육 직접 접촉 금지 등을 단서로 달았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전통시장상인연합회 회장이 "전통시장 상인들도 냉장시설을 갖추고 있어 개별포장을 하지 않아도 위생에 문제가 없고, 개별포장에는 마리당 500원~700원 정도의 가격이 상승해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제도”라고 주장하며 예외 허용을 요구한데 따른 것이다.

◆ 소비자단체·관련 업계 "정부 제정신 아냐"

소비자단체와 관련 업계는 이 같은 정부의 발빠른 대응에 대해 위생적인 가금육 유통체계를 전면 무력화 할 수 있는 발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가금육 포장판매 예외가 허용될 경우 '도계~가공~운반~판매'의 전과정에 구축된 식품안전의 고리가 소비자 접점에서 끊어지는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착ㆍ확산단계에 있는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시스템의 취지와 효과도 무력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육계업계 측은 "사육과 운송, 가공, 유통과정에서 제아무리 높은 단계의 식품안전관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최종 판매과정에서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앞 단계의 품질 및 식품안전 관리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유무역협정(FTA)의 확대에 따른 시장개방 상황에서 국내 가금산업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판매단계에서 비위생적 관리에 의한 품질저하를 방지해야 국내산 가금육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높아져 국내 가금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실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가금산업 강국들과 FTA가 체결 발효되는 상황에서 닭고기는 매년 10만톤 수입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닭고기 생산원가는 국내산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어 우리나라 가금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소비자단체 등도 국회와 정부의 닭고기 및 오리고기의 비포장유통을 허용하는 축산물위생관리법령의 개정작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1개 단체는 최근 성명을 통해 "지난 2011년부터 전면 시행된 가금육의 개체포장의무화 제도에 의해 재래시장에서 닭고기 및 오리고기의 포장유통이 거의 정착돼 가고 있다"며 "현시점에서 이 제도를 포기할 경우 그동안 중앙정부와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수많은 노력과 비용을 투입해 완성된 훌륭한 성과가 일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들 단체는 특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문제를 최우선적으로 책임지고 지켜내야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규제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 제도를 앞장서서 폐지하려고 하는 점에 대해 우리 소비자단체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전통시장 활성화 위해 가금육 포장판매 조기정착돼야"

일각에서는 오히려 포장유통으로 식품안전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전통시장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전통시장 이용고객이 생닭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이유는 생산이력과 위생안전에 대한 불신 때문인데 가금육을 포장하지 않고 유통 판매할 경우 식품안전 관리에 대한 소비자 신뢰 저하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 원산지 변조에 의한 수입산의 국내산 둔갑 판매 ▲ 브랜드 변조에 의한 제조사 둔갑 판매 ▲ 제조일자 변조에 의한 유통기한 속임 판매 ▲ 물을 뿌리거나 침전시켜 무게를 늘리는 증체 판매 ▲ 포장지위조 및 자체 포장에 의한 위장 판매 행위가 성행해 소비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우려 등이 지적되고 있다.

소비자단체들도 "이러한 제도로 일시적으로 일부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이득을 취할 수는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식품의 안전과 품질문제가 크게 손상을 입으면서 장기적으로는 재래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육계 전문가는 "전통시장에서도 대형 유통매장 못지 않은 위생, 품질관리, 식품안전 수준을 유지해야 소비자의 신뢰가 높아져 판매가 활성화될 수 있다"며 "포장판매를 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소비자 신뢰가 낮아져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b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