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재부의 상습적 입법예고 위반
“세법을 바꾼다고 해서 정부에 의견을 내려고 했더니 입법예고 기간이 줄어 기회를 놓쳤습니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내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이런 불만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법령을 개정하거나 제정할 경우 행정절차법에 따라 40일 이상 입법예고 기간을 둬야 한다. 법은 국민 실생활에 직결되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라는 의도에서 마련된 제도다. 다만 법 개정을 긴급하게 추진해야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세법 개정안에 따라 16개의 법률을 개정하면서 단 한 건도 40일의 입법예고 기간을 지키지 않았다. 모두 한 달 미만이었다. 특히 관세법, 관세사법,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의 입법예고 기간은 18일에 불과했다. 심지어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개별소비세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고작 4일이었다. 국민적 관심사가 무척 높은 사안이었는데도 그랬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국회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 기재부 관계자는 “9월23일까지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내고 입법예고 기간 40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률 개정안을 7월 말까지 완성해야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입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제처도 기재부의 상황이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라며 맞장구를 쳐줬다.

세법은 국민 실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정부안대로 세법이 바뀌면 국민은 세금을 지금보다 5680억원이나 더 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구나 기재부가 입법예고 기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주어진 상황 탓이 아니라 습관적 행태에 가까워 보였다. 기재부는 올 들어 총 22차례에 걸쳐 법률안 입법예고를 했는데 40일을 넘긴 경우는 단 두 차례에 그쳤다. 정부 전체로도 입법예고 기간을 단축시킨 경우의 45.5%가 기재부 몫이었다. 아무리 봐도 상습적이다.

김주완 경제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