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맥빠진 서울시의 '금융중심지 IR'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추가 질문은 이메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2일(현지시간) 오후 6시30분 뉴욕 맨해튼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시 금융중심지 설명회(IR)’ 현장. 사회자가 의례적인 말로 행사가 종료됐다고 선언하자 몇 명 남지 않은 참석자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사 실무를 맡은 코리아소사이어티 관계자들은 “100명도 못 채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라며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식적인 주제발표와 외빈들의 “바쁜 와중에도…”로 시작되는 인사말, 기념사진 촬영, 현지 한인 은행과의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 체결에 “내년엔 더욱 실속 있는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까지 ‘일회성 이벤트’의 요소를 다 갖춘 행사였다.

이날 행사는 2009년 1월 서울시가 종합 금융중심지로 선정된 후 아홉 번째다. 홍콩과 싱가포르, 런던, 뉴욕까지 서울시가 벤치마킹하려는 글로벌 금융허브를 다 돌았다. 글로벌 금융회사의 서울 유치와 이를 통한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 고용창출이 목표지만 그동안 MOU를 체결한 금융회사가 서울사무소를 열었다는 소식은 지금껏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HSBC, ING생명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최근 2년간 약속이나 한 듯 짐을 싸거나 지분을 팔고 한국을 떠났다.

이날 행사에서 정작 외국인들의 관심을 끈 기관은 서울시가 아닌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이었다. 월가 금융회사 직원들의 질문도 “부동산 등 대체투자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 등 두 기관의 기금운용전략에 집중됐다. 서울시의 금융허브 전략이나 홍콩 등 경쟁도시와 비교해 어떤 비교우위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주최 측 관계자는 “그렇다고 행사를 안 할 수도 없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 살아있는 한 예산이 배정되고 정부 조직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뉴욕에 나와 있는 한국 금융회사 지점을 동원하지 않고 머릿수를 채운 것이 다행”이라는 한 참석자의 얘기가 귓속을 맴돌았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