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값 추락…5년 만에 최저
국제 원자재값이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곡물과 비철금속 가격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원자재 블랙홀’로 불리던 중국의 성장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줄어든 데다 최근 달러 강세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경우 공급 과잉도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주요 20개 원자재 가격을 반영하는 토털리턴 블룸버그 원자재지수는 22일(현지시간) 118.2로, 2009년 7월17일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지난 6월 말보다 약 12% 빠졌다. 지수에 반영되는 원유 콩 니켈 금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모두 하락한 영향이다. 존 베그데일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원자재 시장은 올 상반기 반짝 회복세를 보였으나 달러 강세와 중국 지표 부진에 민감해진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서면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중국의 성장이 다시 탄력을 받는 등 근본적인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원자재 시장이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곡물 중에서 콩값은 6월 이후 30% 이상 떨어졌다.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미국에서 올해 풍작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옥수수와 밀 가격도 같은 기간 각각 22%와 16% 하락했다.

철광석과 비철금속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철광석은 6월 말 이후 약 15% 하락해 이날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당 80달러 수준에 거래됐다. 니켈은 6월 이후 10% 이상 떨어졌고, 구리는 같은 기간 4% 내렸다. 귀금속인 금과 은은 3분기 들어 각각 8.5%, 15.7% 하락했다.

中 수요 감소에 철광석·구리 가격 '곤두박질'

국제유가는 미국이 시리아 내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는 등 중동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최근월물과 브렌트유는 23일 미국의 공습 소식에 소폭 반등했지만 각각 배럴당 91.11달러와 97.20달러에 거래되며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브렌트유는 전날엔 2년 만에 최저인 배럴당 96.64달러까지 떨어졌었다. 유가 안정은 북미 셰일에너지 붐으로 공급이 증가한 반면 유럽과 아시아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을 끌어내리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달러 강세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가 다가오면서 유로와 엔 등 10개국 통화에 대한 미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주까지 10주 연속 상승했다. 1997년 이후 주간 기준으로 최장 랠리다. 국제 원자재는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약세일 때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강세일 때는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중국의 경기둔화가 꼽힌다. 이로 인한 중국 수요 감소는 산업용 원자재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은 세계 철광석 수요의 66%를 차지한다. 구리는 44%, 석유는 11%를 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7.7%에서 올 상반기 7.4%로 둔화됐다. 지난달 중국의 산업 생산은 5년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23일 발표된 HSBC의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잠정치는 50.5로 지난달의 50.2보다 높아졌지만 3분기 성장률은 7%대 초반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톰 켄달 크레디트스위스 원자재 담당 애널리스트는 “우리는 중국 성장의 모멘텀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철광석 산업의 경우 중국 경기 둔화로 인해 이미 ‘좀비 상태’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수요 부진으로 인한 철강시장의 과잉 공급량이 올해 7900만t에서 내년에 1억580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리신촹 중국철강산업협회 부사무총장은 “철광석 가격은 중국 조강 생산량 둔화로 상당 기간 t당 80달러대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보라/김태완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