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기업사냥꾼’이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대출을 받아 상장기업 최대주주 지분을 사들이는 ‘무자본 인수합병(M&A)’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무자본 M&A로 상장사를 손에 넣은 기업사냥꾼은 사채업자로부터 빌린 인수자금을 갚고 차익도 거두기 위해 주가조작, 횡령 등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무자본 M&A의 타깃이 된 기업 중 절반가량이 증시에서 퇴출됐다며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현금 많은 기업이 1차 타깃

투자자 울리는 무자본 M&A 주의보
금융감독원은 2011년부터 올 7월까지 무자본 M&A 세력의 ‘먹잇감’이 된 15개 기업에 대한 분석 자료를 24일 발표했다. 2011년 1건에 불과했던 무자본 M&A 관련 불공정거래 적발 건수는 2012년 3건, 2013년 6건, 2014년 1~7월까지 5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무자본 M&A란 기업사냥꾼이 인수할 기업의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돈을 빌린 뒤 최대주주에게 인수대금을 주고 경영권을 넘겨받는 형태의 거래를 말한다. 기업사냥꾼 입장에선 자기 돈을 투입하지 않고도 상장사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다.

타깃은 시가총액이 작거나 현금보유액이 많은 상장사다. 시가총액이 작은 회사는 호재성 정보를 띄워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뒤 ‘먹튀’하기에 적합하고, 현금이 많은 회사는 횡령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다.

○상장폐지로 투자자 피해 급증

무자본 M&A의 타깃이 된 상장사는 대부분 초토화됐다. 금감원이 적발한 15개 기업 중 7개사는 상장폐지됐거나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살아남더라도 해당 종목에 투자한 ‘개미’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횡령 목적으로 무자본 M&A를 당한 기업 주가는 M&A 후 평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87% 떨어졌다. 차익취득 목적으로 인수된 기업도 평균 68% 하락했다.

금감원은 무자본 M&A 세력의 덫에 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런 기업을 ‘투자 리스트’에서 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시 등을 통해 인수자 특징과 인수대금 지급방법 등을 잘 살펴보면 무자본 M&A 여부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자본 M&A의 가장 큰 특징은 인수자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외부 감사를 받을 필요가 없는 영세한 회사나 개인이 인수 주체로 나서기 때문이다. 법인의 경우 회사 자본금이 인수대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게 특징이다. 인수대금을 주로 사채업자나 캐피털회사 등을 통해 마련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대주주 지분 인수자가 인수자금 대부분을 담보대출로 조달한 것으로 공시되면 무자본 M&A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며 “무자본 M&A가 크게 늘어난 만큼 감독당국도 시장 감시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