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 세상은 룰렛 아닌 핀볼 머신…복잡할수록 더 넓게, 멀리 봐라
“이 세상은 룰렛 테이블이 아니라 핀볼 머신이다.”

글로벌 경영컨설팅회사 AT커니의 폴 로디시나 전 회장(사진)이 《초복잡성 세계의 생존전략》에서 거듭 강조하는 말이다. 회전 원반 가운데에 주사위를 넣고 돌리는 룰렛 게임같이 단순한 게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입체적으로 다루는 핀볼처럼 세상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간다는 얘기다.

예전에는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빈 숲에 나무 쓰러지듯 그 지역 외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슬란드처럼 외진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도 금방 전 세계에 충격을 준다. 2010년 화산 폭발은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인 10만7000여 항공편 중단 사태를 야기했다. 변화 사이클도 전례없이 짧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유권자의 표만 챙기며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시장경제의 근본을 뒤엎고 있다. ‘대응이 느린 거인’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데도 많은 의사결정권자들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주요 결정들을 내리고 있다.

[책마을] 이 세상은 룰렛 아닌 핀볼 머신…복잡할수록 더 넓게, 멀리 봐라
AT커니는 어땠는가. 90년간의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며 40여개국에서 3200여명의 컨설턴트가 활동할 정도로 성장한 것은 복잡성의 원리를 먼저 이해했기에 가능했다고 그는 분석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25인에 선정된 그의 통찰력도 비선형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의 복잡성을 남보다 빨리 간파한 데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초복잡성’은 과도한 자극 때문에 결국 무감각해지고 방향감각조차 잃어버리는 세계, 분개한 민중주의와 무능력한 정부 사이에서 길 잃은 자본주의, 파편화된 사회와 지도자 없는 세계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래서 그는 복잡할수록 ‘더 넓게 보고, 더 멀리 보는 방법’으로 우리의 시야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지난 10여년 사이의 휴대폰 전쟁을 보자. 2000년대 초반 모토로라가 아날로그 휴대폰과 디지털 휴대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자 노키아가 디지털 시장을 선점했다. 노키아도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플랫폼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고 말았다. 영원할 것 같던 모토로라와 노키아의 일장춘몽은 모두 시야가 좁고 짧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분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제조·유통·서비스업 분야의 기업들도 극적인 흥망사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빠른 판단과 실행으로 복잡성을 돌파할 경우 드라마틱한 ‘퀀텀 점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래에 찾아올 기회와 잠재적인 리스크를 예측하고 시나리오를 미리 세우는 게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정보처를 다양화하라’ ‘매너리즘에 빠진 전문가들과 사회의 통념을 경계하라’ ‘비범한 사람들과 장소를 활용하라’ 등의 지침을 일러준다.

‘복잡성으로 복잡성을 물리쳐라’는 얘기도 신선하다. 향후 10~20년 내에 복잡한 빅데이터를 감시하고 분석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복잡성을 강점으로 변화시키는 회사, 정부, 공공의료기관 등이 등장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다. 거대한 빅데이터와 연계해 예측 분석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면서 정보 시각화 기술로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가장 좋다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중국 연방의 등장과 같은 미래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메시지 또한 눈길을 끈다. 그는 몇 가지 돌발적인 위험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점점 부유하고 생산적이고 영향력 있고 협력적인 강대국’이 될 것이라며 중국 태고의 용 문양 심벌이 중화권의 상징으로 부활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홍콩이 자유와 법치를 지키는 ‘일국양제’ 시스템을 이뤘듯이 대만 문제도 해결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울러 싱가포르 같은 연관 국가들을 포함하는 중국 연방을 상상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런 변화와 함께 다음에 올 호황을 맞을 준비가 돼 있느냐고 그는 묻는다. 과학기술 발전을 제외하더라도 수천만명에서 곧 수억명에 이르는 중산층이 부상하고 있으니 미래는 더욱 밝다고 그는 강조한다. 경영진이 더 이상 여기서 비껴나 관망하는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 복잡성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행동하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처럼 이 책은 ‘예언’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소극적인 예측보다는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점점 복잡해지는 글로벌 비즈니스와 정치 환경 속에서 수많은 위험과 기회에 직면한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글로벌 전략컨설팅계의 백전노장이 들려주는 조언이어서 더욱 미덥다.

번역을 AT커니 코리아가 맡아 문장은 다소 딱딱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의 신뢰도를 높인 점도 돋보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