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을 앓아 피골이 상접한 환자와 이를 진료하는 의원의 모습을 그린 불암사 ‘감로탱’. 조선시대엔 큰 병이 돌면 굿이나 기도 같은 신앙적 치료법도 성행했다. 들녘 제공
중병을 앓아 피골이 상접한 환자와 이를 진료하는 의원의 모습을 그린 불암사 ‘감로탱’. 조선시대엔 큰 병이 돌면 굿이나 기도 같은 신앙적 치료법도 성행했다. 들녘 제공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병을 앓고 어떻게 치료했는가를 다룬 의약생활사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의료라 하면 허준의 ‘동의보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600년이란 시간에 동의보감만 보며 살지는 않았을 터. 《조선의약생활사》는 병과 치료, 의료제도를 통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명의들의 이야기 대신 병을 고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던 환자들에 주목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아픈 사람들의 기록을 더듬다 보면 조선의 모습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저자가 조선의 전체적 의료시스템보다 개인의 투병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책마을] 병마와 싸웠던 백성 통해서 조선을 본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모두 기록한 묵재 이문건(1494~1567)의 저서 《묵재일기》에 대한 연구다. 이문건은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지, 노비가 앓은 병까지 세세히 기록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치료법이나 약을 물어온 일, 주변에서 들리는 병 이야기도 일기에 적었다. 저자는 “이문건의 의학적 식견이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기에 건강과 질병에 관한 기록을 상세히 적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문건은 손자를 기르며 남겼던 기록인 《양아록》으로 잘 알려졌다. 묵재일기와 양아록에는 손자 숙길이 앓았던 병이 자세히 적혀 있다. 많은 자손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정신병을 앓았기에 겨우 얻은 손자는 그에게 누구보다 소중했다. 이문건의 기록엔 손자가 앓은 병과 고통스럽게 보였던 증세, 이를 고치기 위한 처방 등이 세세히 나와 있다.

병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 중엔 다산 정약용도 있다. 저자는 정약용의 일대기 중 그가 겪은 질병과 노쇠, 의약에 대한 연구를 다룬다. 정약용은 어릴 적부터 앓았던 천연두나 홍역에 대해 기록하는 등 평생에 걸쳐 자신과 가족의 삶, 질병, 죽음을 관찰했다. 유배지에서 각종 약재와 술, 차, 담배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혔던 점이 흥미롭다.

홍역은 17~19세기 조선의 존망을 위협했던 소아전염병이었다. 정조는 재위 기간 일관되게 추진했던 개혁정책을 홍역에도 적용했다. 정조는 홍역이 창궐하자 의원을 각지에 파견하는 한편 약재를 구하기 힘든 이들을 위해 왕실용 약제인 ‘안신원(安神元)’을 대량 공급했다. 질병보고 체계를 확립하고 전국을 대상으로 홍역 대처법을 구했다. 이런 실무적 행동 외에도 전염병을 일으키는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원칙에 맞춰 철저히 진행하라고 지시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서양 의료제도도 놓치지 않고 조명한다.

책은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답게 조선 의료체계를 포함해 그 시절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본다. 많은 자료를 꼼꼼히 분석한 저자의 노력은 돋보이지만 여러 편의 논문을 한 권의 책으로 보다 유기적으로 엮지 못한 편집이 아쉽다. 조선의 의료 모습을 글이 아닌 실물로 느끼고 싶다면 국립고궁박물관과 한독의약박물관이 진행하고 있는 기획 전시 ‘조선왕실의 생로병사-질병에 맞서다’(내달 5일까지,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를 찾아도 좋겠다. 조선 왕실의 생로병사에 대한 다양한 유물과 그 당시 생생한 의료 문화를 볼 수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