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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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56·한국명 이정복) 대표는 자신을 ‘남들과 1인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투자 전문가라면 “모두가 주식 투자하면 안 된다고 해도 지금은 100% 투자할 때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한국은 망했다”며 한국 주식이 쓰레기 취급을 당할 때 그는 반대 길을 갔다. 한국 주식을 싼값에 쓸어 담아 자신이 운용하는 ‘코리아펀드’에 꽉꽉 채워 넣었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한국 주식은 존 리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돌아다녔다.

리 대표를 만난 곳은 서울 삼청동의 프랑스식 식당 르꼬숑이다. 리 대표는 창 밖에 보이는 기와집을 가리키며 “풍경이 일반적인 프랑스 식당과 달라서 좋다”고 했다. 항상 뭔가 다른 것을 찾는 자신의 취향과 맞는다는 것이다. 리 대표가 이끄는 메리츠자산운용의 본사가 여의도에서 멀리 떨어진 삼청동인 것이 떠올랐다. 그는 “금융회사라고 꼭 여의도에 있을 필요가 있느냐”며 “회사를 삼청동으로 옮겼더니 차분한 분위기 때문인지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다른 삶’ 위해 대학 자퇴

리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저는 한국에서 ‘유학생 생활’을 가장 오래한 사람 중 한 명이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유학생활은 여덟 살 때부터 시작됐다. 인천에서 태어난 리 대표의 첫 유학지는 서울이었다. 리 대표 어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6남매 중 막내아들을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로선 서울에서 최고 중 하나로 꼽히던 초등학교다. 리 대표는 “어머니는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한석봉 어머니’ 못지 않으셨습니다”고 회상했다.

이때 전채로 흰 달걀 반숙이 얹어진 샐러드가 나왔다. 한 입거리 감자를 노른자에 찍어 입에 넣은 리 대표는 ‘인천행 완행버스’를 명절 때 외엔 못 탔다고 했다. 어머니는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다”며 주말에도 집에 내려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잘 구워진 빵과 연어 샐러드가 이때 나왔다. 부드러운 빵과 시큼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연어가 묘하게 어울렸다. 크게 한 입 먹은 리 대표는 당시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온갖 것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혼자 이유를 따져보고는 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왜 학생들을 몽둥이로 때릴까’에 대해 고민하는 식이다. 이때부터 조숙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다. 그 역시 또래들과 대화하는 것을 ‘유치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남과 다른 삶’을 갈구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토록 원한 경기중·고 입학은 ‘평준화’ 때문에 무산됐다. 재수한 뒤 입학한 연세대 경제학과에서는 2년 만에 자퇴했다. 남들과 똑같은 앞길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러시아워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어다니는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삼성 대우에 입사한 선배들이 어깨에 힘주고 학교에 찾아와서 자랑했죠. 해외에 자주 나간다는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어요.” 1980년 5월 리 대표는 가족들이 모두 이주한 미국 뉴욕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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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일이면 나도 한다”

학창 시절 이야기에 포크를 내려놨던 리 대표가 크림 소스가 버무려진 얇은 만두를 찍었다. 미국 생활을 오래해서일까, 느끼할 만도 한데 라비올리가 금방 접시에서 사라졌다.

리 대표는 미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회계사가 됐다. 1986년에는 당시 최대 글로벌 회계법인인 ‘피트 마윅 미첼(현 KPMG)’에 입사했다. 당시 피트 마윅 미첼은 ‘3년 일하면 8년 경력을 인정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5분도 쪼개 써야 하는 회계사 생활을 1년 하다 보니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리 대표는 5년 일하고 나서 똑같은 일상에 회의를 느꼈다. 이때 운명처럼 같은 건물에 있던 ‘스커더 스티븐스&클라크’ 간판이 보였다. 주변에 물어 보니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리그 학교 출신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투자은행 경력도 없는 뉴욕대 출신은 어림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리 대표는 도전 의식이 생겼다.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라는 말에 더욱 끌렸다. 어렵사리 미팅을 잡았는데, 스커더 관계자들이 별 관심을 안 보였다.

마침 메인 요리인 양념 등갈비가 나왔다. 갈빗살을 뼈에서 뜯는 리 대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커더 첫 미팅에서 자존심이 상한 리 대표는 “당신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깜짝 놀란 스커더 임원은 그제서야 관심을 보였다. 리 대표는 “내가 앞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줄 텐데 그 태도가 뭐냐. 황당하다”고 했다. 결국 스커더에 입사했다. 이때가 1991년이다.

◆사장 방 없애고 운전기사 없애고

후식으로 쇼콜라 무스가 들어왔다. 초콜릿 색의 무스와 파란색 그릇이 묘하게 어울렸다. 화제가 리 대표의 한국 생활로 옮아갔다. “뉴욕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면서 배운 걸 고향인 한국에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말 우연히 메리츠운용에서 대표직 제의가 온 거예요. 가족을 남겨놓고 바로 짐을 쌌죠.”

리 대표는 메리츠운용에 오자마자 몇 가지 조치를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관습을 뜯어고친 것. 널찍한 사장실과 의전차량, 운전기사를 없앴다. ‘권위’를 없애려는 목적에서다. 그도 평소 택시를 타거나 필요하면 자신의 차량을 직접 운전한다. 요즘은 사원이나 대리급 직원들도 사장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툭하면 ‘소집’되던 회식도 없앴다. 리 대표는 “회식을 하지 않는 것은 직원들이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그런데 아쉬워하는 일부 남자 직원들의 불만소리도 들었다”며 웃었다.

펀드 수익률 ‘만년 꼴찌’를 기록하던 메리츠자산운용은 올 들어 자산운용사 중 2위로 뛰어올랐다. 올해 기록한 펀드 수익률은 17.51%(에프앤가이드 24일 기준). 더 놀라운 것은 직원들의 변화다. “만년 꼴찌 하다 1, 2등을 다투니까 회사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

◆은행 적금은 ‘보장된 손실’

리 대표의 마법은 무엇일까. 그는 “직원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회사, 출근하고 싶어하는 문화를 만들면 의외로 쉽다”고 했다. 스스로에게도 자율성을 부여했다. 메리츠금융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경영진 회의에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그룹과 다른 독자적인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리 대표가 메리츠운용에서 진짜로 원하는 건 따로 있다. 한국의 투자 문화를 확 바꾸는 것이다. “집 근처 식당을 운영하는 나이 지긋한 분들에게 전에 뭘 하셨느냐고 물어보니 대기업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다고 해요. 별다른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막상 회사를 떠나니 막막했던 거죠. 노후에 여유있게 생활하려면 젊을 때부터 꾸준히 주식에 장기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특히 월급을 은행 적금에 쌓아 놓는 것은 ‘보장된 손실(guaranteed loss)’을 얻을 뿐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시중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밑돌기 일쑤여서다. 리 대표는 “열심히 일해서 자산을 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주식 투자를 통해 돈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코리아펀드와 존 리의 '15년 인연'

존 리 대표가 ‘코리아펀드’와 인연은 맺은 것은 1991년이다. 미국 뉴욕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스커더의 펀드매니저로 옮긴 직후다. 코리아펀드는 미국 월가의 기관 및 개인들이 최초로 한국 주식에 투자한 해외 펀드다. 리 대표가 코리아펀드를 운용한 15년간 수익률은 총 315%.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 14%와는 비교가 안 된다. 연평균 11%의 수익률은 그의 운용 능력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2005년 리 대표가 라자드자산운용으로 옮기면서 코리아펀드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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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리 대표의 단골집 '르꼬숑' 부드러운 프랑스 가정식 코스요리가 입맛 돋워

르꼬숑(Le Cochon)은 프랑스 말로 ‘돼지’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식당의 주요리는 프랑스 식으로 조리한 돼지고기다. 특징은 가정식 식당으로 메뉴가 코스 요리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 그만큼 음식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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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달걀 반숙을 톡 터뜨려 감자 상추 등과 함께 먹는 ‘리옹 샐러드’, 다진 연어살을 빵에 얹어 먹는 ‘연어 리예트’는 메인 요리를 먹기 전 입맛을 돋운다. 두 번째 전채요리(메인 요리 전에 나오는 음식)로 갑오징어 살이 들어간 얇은 만두(라비올리)와 새우가 나온다. 크림 소스가 적당히 배어 있는 라비올리를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다. 포크립의 일종인 양념 돼지 등갈비와 밀가루를 물에 불려 찐 쿠스쿠스가 메인 요리다.

르꼬숑은 2010년 6월 서울 도곡동에서 개업해 작년 9월 서울 삼청동으로 옮겨 왔다. 정상원 사장은 “4층짜리 양옥 가정집의 2~3층이 ‘프랑스 가정집’ 느낌이 들어 고민 없이 이전했다”고 말했다.

점심 메뉴는 ‘샐러드-전채-메인-커피’로 구성된다. 저녁 메뉴에는 전채와 메인 사이에 ‘메인 전 음식’이 추가된다. 커피 대신 디저트가 나온다. 가격은 점심(3만2000원)보다 저녁이 1만원 비싸다. 요리는 정 사장과 18년 경력의 백성진 요리사가 맡고 있다. (02)6032-1300

조재길/황정수 기자 road@hankyung.com/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