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폭음·스마트폰 중독, 이제 마흔인데…벌써 치매?
지난 2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치매 극복의 날’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가 급증하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치매 환자가 60만명을 돌파했고, 1인당 진료비도 1092만원으로 모든 질환 가운데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의료계는 이제 치매를 고령층이 겪는 노인성 질환으로만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문의들이 추천하는 연령대별 치매 예방법을 알아봤다.

○성장기엔 악기로 뇌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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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세포는 대략 20세 정도까지 성장한다. 그 이후에는 뇌세포 수가 늘지 않는다. 하지만 뇌세포를 연결하는 신경은 계속 발달한다. 이 신경이 촘촘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 뇌세포가 급속히 파괴돼도, 정상적인 기억이나 판단이 가능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행이나 현장학습 등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뇌세포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뇌의 예비 용량을 늘리는 데 독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다양한 삶의 스토리를 간접경험하면 나이 들어 치매 발병률을 다른 사람보다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백석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장기 때 악기 배우는 것을 적극 권했다.

○20·30대 폭음습관, 치매 불러

최근 몇 년 새 의료계에선 젊은 시절 잘못된 음주습관이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는 보고서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김기웅 국립중앙치매센터장(분당서울대병원 교수)은 “사람마다 뇌세포를 1000억개 정도 가지고 태어나는데 하루에 약 10만개씩 파괴된다. 하지만 과음을 하게 되면 100만개 이상, 기억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면 한 번에 수천만개가 파괴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특히 “20·30대에 생긴 폭음 습관은 60대를 넘어가면 필연적으로 뇌세포 손상으로 인한 치매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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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술을 5회 이상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7배가량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윤 교수는 “문제는 한 번 파괴된 뇌 세포는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40대, 운동·학습기회 스스로 찾아야

40대가 넘어가면 몸의 노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어져 뇌 활동도 자연스럽게 둔화되기 시작한다. 전문의들은 40대 중년층은 규칙적 운동과 새로운 학습을 꼭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필휴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되도록 ‘암기가 필요한 운동’을 추천했다. 동작을 외워야 하는 태권도 검도 등을 하면 운동효과와 학습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1주일에 3회 정도, 한 시간 이상 걷는 것도 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각종 스마트기기는 뇌세포 노화의 주범이다.

윤영철 중앙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스마트 기기 의존이 뇌세포를 둔화시킨다”며 “한 번 가본 길은 되도록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기억해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0·60대, 친밀한 인간관계 중요

전체 치매의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40대 중·후반부터 뇌에 쌓인다. 김어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50대 이후에는 대장내시경 검사처럼 5년 주기로 건강검진 때 뇌 사진을 찍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목적의식과 긴밀한 인간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활기차고 호기심 많은 인간관계에 근거한 활동이 운동이나 금연보다 더 높은 항치매 효과가 있다는 보고서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억지로 하는 사회생활이 아니라 친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많으면 치매에 덜 걸린다는 학계 보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인간관계에는 가족들과의 만남도 포함된다.

윤 교수는 글쓰기를 강조했다. 그는 “주기적으로 신문이나 책의 한 단락을 읽고 다시 써보거나, 여행을 다녀와 보고 들은 것을 떠올리며 기행문을 써보면 기억력 감퇴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