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수석, 최연소…이진하 "비결은 왕성한 호기심과 집요한 탐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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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선정 35세 이하 젊은 혁신가
이진하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이진하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준수한 외모의 ‘엄친아’
경기과학고 수석졸업·日도쿄대 유학…美MIT 석사
삼성서 미래기술 연구…학생때 시각장애인용 시계 개발 화제
영화 ‘아이언맨’의 한장면 현실로
마우스·키보드 정보 탐색으로 한계…PC 콘텐츠 손으로 조작하는 기술 개발
“혁신의 한계는 상상력일 뿐”
세상이 항상 공평한 것 같지는 않다. 이진하 삼성전자 인터랙티브 시각화 랩장(책임연구원·27)을 만나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짙은 눈썹에 깊게 파인 쌍꺼풀 눈, 고운 피부는 웬만한 연예인 뺨친다. 청바지에 재킷을 걸친 옷 차림도 돋보였다. 경기과학고를 수석 졸업했고 일본 도쿄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학대학원 산하 미디어랩에서 예술·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다닐 때 “시각장애인도 멋진 시계를 차게 해주자”는 생각이 들어 지인인 김형수 씨를 도와 시계 브랜드 ‘이원’을 출시했고,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됐다. 2012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미래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행운은 현재진행형이다. MIT가 발행하는 기술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매년 선정하는 ‘TR 35(35세 이하 젊은 혁신가 35명)’에 올해 뽑혔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TR 35’에 선정된 바 있다. 올초 미국 정보기술(IT) 잡지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32인’에도 들었다.
타고난 천재인가. 이 책임연구원은 “저는 천재 같은 거 아닙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보다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원시시대 인간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일만 했죠. 하지만 소통 기술이 진화하면서 ‘인간성’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통 기술이 나아지면 세상은 더 살기 좋게 되겠지요. ”
과학고 전체 수석의 비결은
그는 어린 시절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집도 ‘강남’이 아닌 과천이었다. 아버지는 컨설팅업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종이접기 교사인 평범한 가정이었다. 남들보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했을까.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손재주가 좋았어요. 수학적 재능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냥 누나 따라서 성실하게 공부했어요. 따로 비결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궁금증을 풀기에 한참 미진한 답이다.
경기과학고 전체 수석 졸업을 언급하면서 ‘공부의 비법’을 다시 물었다. 이 책임은 “우연 반, 전략 반”이라고 아리송하게 답했다. 성적을 수우미양가로 주는데, 자기보다 훨씬 똑똑한 친구들도 졸업할 때 보니 하나씩은 ‘우’가 있었단다. 다른 과목을 다 100점 받았는데 영어만 89점을 받았다는 얘기다. 반면 본인은 대부분 과목 성적이 91점인데, 한 과목도 90점 이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 수’를 받고 전체 수석을 했다는 것이다.
“굳이 비결이라면, 공부와 직접 관계없는 이런저런 것을 좋아했어요. 전쟁사 같은…사람들이 왜 싸우나, 어떤 걸 좇으면서 사나, 이런 게 재미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했고요. 그러다 보니 싫어하는 과목 없이 골고루 흥미를 가진 것 같아요. 한 가지 생각이 들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탐닉했지요. ‘올 수’를 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점수를 관리한 측면도 있어요. 그래야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삶의 목표를 세워준 일본 생활
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막상 일본에 발을 디디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는 잘 짜인 좋은 교육 시스템이 있어요. 거기에 잘 적응할 수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그 체제 안에 저를 끼워 맞출 수가 없었어요. 자유로운 학습이 저한테 훨씬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죠.” 한때 미대를 가겠다며 무작정 귀국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어떻게 보낸 대학인데 포기하느냐”며 다시 돌려보냈다.
답답한 일본 생활은 인생의 목표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치열하게 진로를 고민할 즈음 이 책임연구원의 이모인 이정진 씨(세계적인 사진작가)가 이런 조언을 했다. “네가 뭘 제일 잘하는지는 너밖에 모른다. 네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찾아라. 그러면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한참 고민한 끝에 ‘만들기가 적성’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자신의 소질이 뭔지 파악할 땐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만 고민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블로그에 스스로 만든 미디어 아트 작품을 올리고, 졸업논문 주제로는 전공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인터랙션 장비(키보드처럼 기계와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택했다. ‘상상력의 천국’이라 불리는 MIT 미디어랩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미디어랩에서 미래를 그리다
MIT 미디어랩은 특이하게 운영된다. 일단 건축학과에 속해 있다. 랩 운영자금은 100% 기업 후원으로 충당한다. 그런 만큼 미래에 세상을 바꿀 제품들을 실험하고 연구한다. ‘미술·과학’ 전공인 그로서는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다.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과학 지식도 필요하며,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는 저명한 컴퓨터 학자 앨런 케이의 경구(警句)가 미디어랩의 운영 철학이다. “미디어랩은 개인의 자아를 맘껏 발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정해진 틀도 없고요.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싸우고 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소통과 공간’에 눈을 뜨다
이때부터 ‘공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분 맞지만, 스마트폰을 통해서는 손가락으로밖에 정보를 찾을 수 없고 찾은 정보는 5인치의 작은 화면을 통해서만 표출됩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죠. 세상에 정보는 많은데, 정보를 우리와 연결해주는 도로(스마트폰, 컴퓨터, 손가락, 키보드)가 너무 좁은 셈입니다. 정보와 인간 사이에 병목 현상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개발한 게 ‘스페이스 탑’이다. 컴퓨터를 쓸 때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는 사고의 틀을 깨 버렸다. 시연 영상을 보면, 일단 모니터 뒤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모니터에 떠 있는 콘텐츠들을 조작한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이 허공에 떠 있는 그래픽들을 손으로 직접 조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음성, 손가락 손짓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화면이 아닌 주변의 모든 공간을 활용해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정보와 인간 사이에 병목 현상이 확 줄어들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더 잘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죠.” 삼성전자를 직장으로 택한 것도 그래서다. “삼성은 TV와 컴퓨터도 만들면서 아파트도 짓는 회사잖아요. 전자제품에 대한 최첨단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공간에 대한 이해도 갖춘 회사는 세계에 삼성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그가 개발한 인터랙션 장비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이 지금보다 더 잘 소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나무와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나무를 마구 베어 버리면, 나무가 반응하고 지금의 행위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보여주는 것이죠. 사람들은 좀 더 현명해질 것이고 지금처럼 한치 앞도 못보는 것처럼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지겠죠. 꿈 같은 얘기라고요? 그 꿈을 붙들고 고민하면 반드시 현실이 될 것입니다.”
화제 모은 TED 강연
3차원 펜·스페이스 탑…정보탐색의 미래기술 보여줘
이진하 삼성전자 인터랙티브 시각화 랩장(책임연구원)이 대중에 알려진 것은 작년 2월 TED에서 연설한 이후다. 세계적 리더들이 무료로 지식을 공유하는 장인 TED에서 자신이 개발한 인터랙션 장비 시연 영상을 보여줬다. 인간이 정보를 만들고 찾는 방법의 한계를 깨는 것들이었다.
처음 소개한 것은 ‘3차원 펜’. 스크린 위에 펜을 세게 누르면 선이 수직으로 ‘깊게’ 그려진다. 반대로 살짝 누르면 ‘얕게’ 그려진다. 펜을 세게, 혹은 살짝 누르는 것만으로 3차원 그래픽을 그릴 수 있다.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혁신적 방법이지만 이 책임은 “여전히 두 손을 정보 입력에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보여준 것이 스페이스 탑이다. 일반 PC처럼 키보드와 마우스는 있지만, 추가로 두 손을 허공에서 움직이는 방법으로 정보를 배열하고 조작할 수 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픽셀(컴퓨터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을 실제로 만지고 느낄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진행한 것이 ‘제론 프로젝트’다. 자기장을 이용해 무중력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금속 공을 하나 띄워놓는다. 무중력 공간에서 사용자가 공을 움직이면 프로그램이 그 운동을 기억한다. 이를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우리 삶에 어떤 제약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상상력일 뿐”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친다. (http://www.ted.com/talks/jinha_lee_a_tool_that_lets_you_touch_pixels)
■ 이진하 연구원 약력
▷1987년 서울 출생
▷경기과학고·도쿄대 전자공학과 졸업
▷2011년 MIT 미디어랩 석사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 인턴
▷2012년 삼성전자 입사
▷2013년 TED 연설
▷2014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TR 35’ 선정, 패스트컴퍼니가 뽑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32인’ 선정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경기과학고 수석졸업·日도쿄대 유학…美MIT 석사
삼성서 미래기술 연구…학생때 시각장애인용 시계 개발 화제
영화 ‘아이언맨’의 한장면 현실로
마우스·키보드 정보 탐색으로 한계…PC 콘텐츠 손으로 조작하는 기술 개발
“혁신의 한계는 상상력일 뿐”
세상이 항상 공평한 것 같지는 않다. 이진하 삼성전자 인터랙티브 시각화 랩장(책임연구원·27)을 만나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짙은 눈썹에 깊게 파인 쌍꺼풀 눈, 고운 피부는 웬만한 연예인 뺨친다. 청바지에 재킷을 걸친 옷 차림도 돋보였다. 경기과학고를 수석 졸업했고 일본 도쿄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학대학원 산하 미디어랩에서 예술·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다닐 때 “시각장애인도 멋진 시계를 차게 해주자”는 생각이 들어 지인인 김형수 씨를 도와 시계 브랜드 ‘이원’을 출시했고,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됐다. 2012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미래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행운은 현재진행형이다. MIT가 발행하는 기술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에서 매년 선정하는 ‘TR 35(35세 이하 젊은 혁신가 35명)’에 올해 뽑혔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도 ‘TR 35’에 선정된 바 있다. 올초 미국 정보기술(IT) 잡지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32인’에도 들었다.
타고난 천재인가. 이 책임연구원은 “저는 천재 같은 거 아닙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지금보다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원시시대 인간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일만 했죠. 하지만 소통 기술이 진화하면서 ‘인간성’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통 기술이 나아지면 세상은 더 살기 좋게 되겠지요. ”
과학고 전체 수석의 비결은
그는 어린 시절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집도 ‘강남’이 아닌 과천이었다. 아버지는 컨설팅업에 종사했고, 어머니는 종이접기 교사인 평범한 가정이었다. 남들보다 사교육을 많이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했을까.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손재주가 좋았어요. 수학적 재능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냥 누나 따라서 성실하게 공부했어요. 따로 비결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궁금증을 풀기에 한참 미진한 답이다.
경기과학고 전체 수석 졸업을 언급하면서 ‘공부의 비법’을 다시 물었다. 이 책임은 “우연 반, 전략 반”이라고 아리송하게 답했다. 성적을 수우미양가로 주는데, 자기보다 훨씬 똑똑한 친구들도 졸업할 때 보니 하나씩은 ‘우’가 있었단다. 다른 과목을 다 100점 받았는데 영어만 89점을 받았다는 얘기다. 반면 본인은 대부분 과목 성적이 91점인데, 한 과목도 90점 이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 수’를 받고 전체 수석을 했다는 것이다.
“굳이 비결이라면, 공부와 직접 관계없는 이런저런 것을 좋아했어요. 전쟁사 같은…사람들이 왜 싸우나, 어떤 걸 좇으면서 사나, 이런 게 재미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했고요. 그러다 보니 싫어하는 과목 없이 골고루 흥미를 가진 것 같아요. 한 가지 생각이 들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탐닉했지요. ‘올 수’를 받기 위해 전략적으로 점수를 관리한 측면도 있어요. 그래야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삶의 목표를 세워준 일본 생활
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막상 일본에 발을 디디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는 잘 짜인 좋은 교육 시스템이 있어요. 거기에 잘 적응할 수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그 체제 안에 저를 끼워 맞출 수가 없었어요. 자유로운 학습이 저한테 훨씬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죠.” 한때 미대를 가겠다며 무작정 귀국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어떻게 보낸 대학인데 포기하느냐”며 다시 돌려보냈다.
답답한 일본 생활은 인생의 목표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치열하게 진로를 고민할 즈음 이 책임연구원의 이모인 이정진 씨(세계적인 사진작가)가 이런 조언을 했다. “네가 뭘 제일 잘하는지는 너밖에 모른다. 네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을 찾아라. 그러면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한참 고민한 끝에 ‘만들기가 적성’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자신의 소질이 뭔지 파악할 땐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만 고민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만들기’ 작업을 시작했다. 블로그에 스스로 만든 미디어 아트 작품을 올리고, 졸업논문 주제로는 전공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인터랙션 장비(키보드처럼 기계와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택했다. ‘상상력의 천국’이라 불리는 MIT 미디어랩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미디어랩에서 미래를 그리다
MIT 미디어랩은 특이하게 운영된다. 일단 건축학과에 속해 있다. 랩 운영자금은 100% 기업 후원으로 충당한다. 그런 만큼 미래에 세상을 바꿀 제품들을 실험하고 연구한다. ‘미술·과학’ 전공인 그로서는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다.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과학 지식도 필요하며,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는 저명한 컴퓨터 학자 앨런 케이의 경구(警句)가 미디어랩의 운영 철학이다. “미디어랩은 개인의 자아를 맘껏 발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정해진 틀도 없고요.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싸우고 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소통과 공간’에 눈을 뜨다
이때부터 ‘공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분 맞지만, 스마트폰을 통해서는 손가락으로밖에 정보를 찾을 수 없고 찾은 정보는 5인치의 작은 화면을 통해서만 표출됩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죠. 세상에 정보는 많은데, 정보를 우리와 연결해주는 도로(스마트폰, 컴퓨터, 손가락, 키보드)가 너무 좁은 셈입니다. 정보와 인간 사이에 병목 현상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개발한 게 ‘스페이스 탑’이다. 컴퓨터를 쓸 때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는 사고의 틀을 깨 버렸다. 시연 영상을 보면, 일단 모니터 뒤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모니터에 떠 있는 콘텐츠들을 조작한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이 허공에 떠 있는 그래픽들을 손으로 직접 조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음성, 손가락 손짓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화면이 아닌 주변의 모든 공간을 활용해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정보와 인간 사이에 병목 현상이 확 줄어들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더 잘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죠.” 삼성전자를 직장으로 택한 것도 그래서다. “삼성은 TV와 컴퓨터도 만들면서 아파트도 짓는 회사잖아요. 전자제품에 대한 최첨단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공간에 대한 이해도 갖춘 회사는 세계에 삼성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책임연구원은 그가 개발한 인터랙션 장비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이 지금보다 더 잘 소통하는 세상을 꿈꾼다. “나무와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나무를 마구 베어 버리면, 나무가 반응하고 지금의 행위가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보여주는 것이죠. 사람들은 좀 더 현명해질 것이고 지금처럼 한치 앞도 못보는 것처럼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지겠죠. 꿈 같은 얘기라고요? 그 꿈을 붙들고 고민하면 반드시 현실이 될 것입니다.”
화제 모은 TED 강연
3차원 펜·스페이스 탑…정보탐색의 미래기술 보여줘
이진하 삼성전자 인터랙티브 시각화 랩장(책임연구원)이 대중에 알려진 것은 작년 2월 TED에서 연설한 이후다. 세계적 리더들이 무료로 지식을 공유하는 장인 TED에서 자신이 개발한 인터랙션 장비 시연 영상을 보여줬다. 인간이 정보를 만들고 찾는 방법의 한계를 깨는 것들이었다.
처음 소개한 것은 ‘3차원 펜’. 스크린 위에 펜을 세게 누르면 선이 수직으로 ‘깊게’ 그려진다. 반대로 살짝 누르면 ‘얕게’ 그려진다. 펜을 세게, 혹은 살짝 누르는 것만으로 3차원 그래픽을 그릴 수 있다.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혁신적 방법이지만 이 책임은 “여전히 두 손을 정보 입력에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보여준 것이 스페이스 탑이다. 일반 PC처럼 키보드와 마우스는 있지만, 추가로 두 손을 허공에서 움직이는 방법으로 정보를 배열하고 조작할 수 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픽셀(컴퓨터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을 실제로 만지고 느낄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진행한 것이 ‘제론 프로젝트’다. 자기장을 이용해 무중력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금속 공을 하나 띄워놓는다. 무중력 공간에서 사용자가 공을 움직이면 프로그램이 그 운동을 기억한다. 이를 활용해 다양한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이 책임연구원은 “우리 삶에 어떤 제약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상상력일 뿐”이라는 말로 연설을 마친다. (http://www.ted.com/talks/jinha_lee_a_tool_that_lets_you_touch_pixels)
■ 이진하 연구원 약력
▷1987년 서울 출생
▷경기과학고·도쿄대 전자공학과 졸업
▷2011년 MIT 미디어랩 석사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 인턴
▷2012년 삼성전자 입사
▷2013년 TED 연설
▷2014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TR 35’ 선정, 패스트컴퍼니가 뽑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32인’ 선정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