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모든 상장기업의 배당계획과 최대 배당 한도를 사업보고서와 분기·반기 보고서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는 한경의 보도는 놀랍다. 배당을 축소하거나 확대할 때 그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상장기업들에 대한 배당확대 압력이요 새로운 규제다. 불과 4개월 전 공시 부담을 줄이겠다고 역설했던 금감원의 약속은 이로써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기업유보 세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배당을 늘리라는 공공연한 압력일 것이다.

기업들이 배당을 할 것인지 아니면 사내에 유보할 것인지의 최종적 판단은 주총에서 결정한다. 이는 장기 위험을 감수하는 시간 선택의 문제로서 경영진과 주주의 결단을 그 본질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애플 같은 초이익 기업들조차 오랫동안 무배당 정책을 지속해왔던 것은 그만큼 기업경영 환경이 예측불허였기 때문이다. 무배당 정책에도 불구하고 MS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투자자들이 경영진의 이런 전략에 충분히 동의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공시 의무화라는 이름으로 배당을 늘릴 것을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투자자들의 배당에 대한 기대치를 만들어내겠다는, 비열한 정부 압력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무엇보다 기업가치를 높임으로써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오늘의 배당과 내일의 투자를 비교선택하는 것은 기업들이 자산을 배분하는 고도화된 전략이다. 시장에서의 배당압력을 끌어내는 방법으로 배당을 늘리자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는 금융감독 업무의 본질과도 어긋난다. 공시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공시제도를 악용한다는 것 자체가 규제 관료적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