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이 빚어낸 바그너 선율…객석은 150분 마법에 빠졌다
두 시간 반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오케스트라 연주가 멈추자 관객들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끝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과 바그너’ 연주회(사진)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 ‘반지’의 첫 작품인 ‘라인의 황금’을 콘서트 형식(콘체르탄테)으로 선보인 공연이었다. 한국 공연단체가 이 곡을 연주한 것은 처음이다.

일반 오페라와 달리 콘체르탄테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무대 아래쪽 악단석인 피트(pit)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연주를 진행한다. 성악가와 오케스트라가 나란히 연주하기 때문에 오페라보다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야기가 고조될수록 실제 오페라로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음악 감상 방법으로서는 괜찮은 편이었다.

전주곡에선 장대하게 흐르는 라인강의 물결이 손에 잡힐 듯했다. 라인강의 세 요정(소프라노 말린 크리스텐슨·박세영, 메조소프라노 양송미)과 니벨룽의 난쟁이 알베리히(베이스바리톤 네이선 버그)가 등장하면서 극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주신(主神) 보탄을 맡은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먼과 불의 신 로게 역의 테너 다니엘 키르히가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고 거인 형제 파졸트와 파프너를 맡은 베이스 유리 보로비에프, 알렉산더 침발류크의 연기가 극에 활기를 더했다. 작은 배역이었지만 천둥의 신 도너와 행복의 신 프로로 활약한 바리톤 김주택과 테너 진성원도 이번 공연에서 얻은 수확으로 손꼽을 만했다. 4장 막바지에서 도너가 천둥과 번개를 불러내 안개를 걷어내는 장면은 대형 망치를 이용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무대 장치와 의상은 없었지만 성악가들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각각의 장면을 잘 표현해냈다. 라인강에선 푸른색, 태양이 떠오를 때는 노란색, 니벨하임(지하세계)에선 붉은색 등으로 바뀐 조명도 효과적이었다.

서울시향은 이번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반지’ 4부작을 완주할 계획이다. 그동안 ‘바그너 음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서울시향의 행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된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