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美·中·日 구애에 몸값 뛴 인도…"챙길 것 다 챙기자" 줄타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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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太 파워게임 '와일드카드' 부상한 12억 거대시장
모디 총리 “돈의 국적 안따져”
29~30일 오바마와 정상회담…中·日 넘는 ‘선물보따리’ 기대
공 들이는 시진핑·아베
中 “舊怨 잊자…200억弗 투자”…日, 특별한 전략적 제휴 선언
한국 입지 줄어드나
“美-日-인도 라인서 배제”…워싱턴 외교가 가능성 제기
요즘 세계에서 가장 바쁜 정상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다. 각국 정상들의 정상회담 ‘러브 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둘러싸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이 남아시아 맹주인 인도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구애 전쟁’이 뜨겁다.
중국은 인도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발판으로 미국의 아태지역 세력 확대를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동안 불협화음이 잦았던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의 ‘남진’을 차단하겠다는 복안이다. 경제 회복의 기치를 내건 모디 총리는 ‘돈의 국적을 따지지 않겠다’는 실용적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인도가 아태지역의 파워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한국이 일본과는 갈등을 빚고 중국과 가까워지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일본-인도’ 라인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워싱턴 외교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모디에 선물 보따리 준비하는 오바마
미국을 방문 중인 모디 총리는 29~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정상회담 순번에서 밀렸다. 그런 만큼 더 큰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지난 18일 새 인도 대사에 인도계 리처드 베르마 전 국무부 법무 담당 차관보를 지명해 인도와의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가정부 학대 및 비자 위조 혐의로 뉴욕 주재 인도 부총영사를 알몸 수색해 인도와 외교 마찰을 빚었다. 당시 인도는 자국 내 미국 외교관들에게 신분증을 반납하라고 통보하고 한 명의 외교관을 추방해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미국은 인도에 천생연분의 나라다.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 테러와 극단주의 등에 대처하는 데 양국의 동반자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양국이 협력 모드로 바뀐 것은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부상과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일본-한국-필리핀-인도’를 잇는 군사·안보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또 수출 확대로 경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인구 12억명의 거대시장을 놓칠 수 없다. 모디 총리는 경제 회복과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모디 총리는 WSJ 기고문에서 “인도를 세계의 새로운 제조업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며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인도 껴안기 나선 아베
아베 총리는 모디 총리를 가장 먼저 만났다. 이달 초 일본으로 초청해 직접 유적지를 안내하는 등 극진히 환대했다. 모디 총리는 일본인 A급 전범들에 대해 무죄 주장을 폈던 인도 출신 고(故) 라디비노드 팔 판사를 거론하며 “도쿄 재판에서 팔 판사의 역할을 누구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도쿄 전범재판의 결정을 부정해 온 아베 총리를 배려한 발언이었다. 두 정상은 경제와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양자관계 구축을 목표로 하는 ‘일본·인도의 특별한 전략적 제휴에 관한 도쿄 선언’에 서명했다. 일본은 5년간 인도에 약 3조5000억엔의 투자 및 융자를 지원하고 미국과 인도의 해상 공동 훈련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참여하기로 했다. 인도는 조만간 일본 투자 유치 및 일본 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 조직을 모디 총리 직속으로 신설할 계획이다.
중국은 최근 항구 운영권 인수와 경제 원조를 통해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구와 스리랑카 콜롬보·함반토타 항구,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를 연결하는 인도양 항로를 완성했다. 인도양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이다. 이 지역은 일본이 중동·아프리카의 석유를 수입하는 해상 통로인 ‘시레인(sea lane)’과 맞물려 있다. NHK는 모디 총리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함으로써 일본이 ‘시레인’을 방어할 길을 열어줬다고 분석했다.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일본에 인도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도에 공들이는 시진핑
아베와 모디의 의기투합을 지켜본 시 주석은 직접 인도를 찾았다. 모디 총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가 하면 간디의 생가를 방문해 직접 물레를 돌리는 시범을 보였다.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은 “200억달러의 투자 약속 외에 중국에 대한 인도 국민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해 시 주석이 직접 매력 공세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아직 인도와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다. 미국에 맞서 아태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면 인도와의 관계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최영삼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은 “중국은 시진핑 정부 들어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데 인도가 중국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중국의 외교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 인도는 공을 들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나라”라고 말했다.
워싱턴·도쿄·베이징=장진모/서정환/김동윤 특파원 jang@hankyung.com
29~30일 오바마와 정상회담…中·日 넘는 ‘선물보따리’ 기대
공 들이는 시진핑·아베
中 “舊怨 잊자…200억弗 투자”…日, 특별한 전략적 제휴 선언
한국 입지 줄어드나
“美-日-인도 라인서 배제”…워싱턴 외교가 가능성 제기
요즘 세계에서 가장 바쁜 정상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다. 각국 정상들의 정상회담 ‘러브 콜’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둘러싸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이 남아시아 맹주인 인도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구애 전쟁’이 뜨겁다.
중국은 인도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발판으로 미국의 아태지역 세력 확대를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 역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동안 불협화음이 잦았던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은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의 ‘남진’을 차단하겠다는 복안이다. 경제 회복의 기치를 내건 모디 총리는 ‘돈의 국적을 따지지 않겠다’는 실용적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최근호에서 “인도가 아태지역의 파워게임에서 와일드카드로 부상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인정하지 않지만, “한국이 일본과는 갈등을 빚고 중국과 가까워지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미국-일본-인도’ 라인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워싱턴 외교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모디에 선물 보따리 준비하는 오바마
미국을 방문 중인 모디 총리는 29~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정상회담 순번에서 밀렸다. 그런 만큼 더 큰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지난 18일 새 인도 대사에 인도계 리처드 베르마 전 국무부 법무 담당 차관보를 지명해 인도와의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가정부 학대 및 비자 위조 혐의로 뉴욕 주재 인도 부총영사를 알몸 수색해 인도와 외교 마찰을 빚었다. 당시 인도는 자국 내 미국 외교관들에게 신분증을 반납하라고 통보하고 한 명의 외교관을 추방해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모디 총리는 지난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미국은 인도에 천생연분의 나라다.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 테러와 극단주의 등에 대처하는 데 양국의 동반자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양국이 협력 모드로 바뀐 것은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중국의 부상과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일본-한국-필리핀-인도’를 잇는 군사·안보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또 수출 확대로 경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인구 12억명의 거대시장을 놓칠 수 없다. 모디 총리는 경제 회복과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모디 총리는 WSJ 기고문에서 “인도를 세계의 새로운 제조업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며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인도 껴안기 나선 아베
아베 총리는 모디 총리를 가장 먼저 만났다. 이달 초 일본으로 초청해 직접 유적지를 안내하는 등 극진히 환대했다. 모디 총리는 일본인 A급 전범들에 대해 무죄 주장을 폈던 인도 출신 고(故) 라디비노드 팔 판사를 거론하며 “도쿄 재판에서 팔 판사의 역할을 누구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도쿄 전범재판의 결정을 부정해 온 아베 총리를 배려한 발언이었다. 두 정상은 경제와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양자관계 구축을 목표로 하는 ‘일본·인도의 특별한 전략적 제휴에 관한 도쿄 선언’에 서명했다. 일본은 5년간 인도에 약 3조5000억엔의 투자 및 융자를 지원하고 미국과 인도의 해상 공동 훈련에 일본 해상자위대가 참여하기로 했다. 인도는 조만간 일본 투자 유치 및 일본 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 조직을 모디 총리 직속으로 신설할 계획이다.
중국은 최근 항구 운영권 인수와 경제 원조를 통해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구와 스리랑카 콜롬보·함반토타 항구,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를 연결하는 인도양 항로를 완성했다. 인도양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이다. 이 지역은 일본이 중동·아프리카의 석유를 수입하는 해상 통로인 ‘시레인(sea lane)’과 맞물려 있다. NHK는 모디 총리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함으로써 일본이 ‘시레인’을 방어할 길을 열어줬다고 분석했다.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일본에 인도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도에 공들이는 시진핑
아베와 모디의 의기투합을 지켜본 시 주석은 직접 인도를 찾았다. 모디 총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는가 하면 간디의 생가를 방문해 직접 물레를 돌리는 시범을 보였다.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은 “200억달러의 투자 약속 외에 중국에 대한 인도 국민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해 시 주석이 직접 매력 공세를 펼쳤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아직 인도와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다. 미국에 맞서 아태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면 인도와의 관계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최영삼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은 “중국은 시진핑 정부 들어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데 인도가 중국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중국의 외교 전략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 인도는 공을 들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나라”라고 말했다.
워싱턴·도쿄·베이징=장진모/서정환/김동윤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