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흥 화학소재솔루션센터장이 실험실의 화학소재 연구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이재흥 화학소재솔루션센터장이 실험실의 화학소재 연구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제조업의 기반에는 화학소재 산업이 있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제조사는 제품에 쓰일 최적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에 화학소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신소재를 활용해 가격은 낮추고 품질은 높일 기회를 번번이 놓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사람이 있다. 이재흥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솔루션센터장이다.

○중기 살리려 화학소재 허브 만들어

이 센터장은 정보력이 부족한 한국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화학소재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높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보를 한곳에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했다. 2007년 정부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화학소재정보은행(CMiB) 설립에 이 센터장이 앞장섰던 이유다.

CMiB가 중소기업 등의 호응을 얻자 2009년 한국화학연구원 산하에 화학소재솔루션센터를 설립했다. 화학소재솔루션센터는 기업에 화학소재 정보와 실험공간을 제공해 연구소에서 나온 결과를 사업화할 수 있게 돕는다. 화학소재솔루션센터 CMiB에 등록된 화학소재는 3만개, 회원사는 700곳에 달한다.

화학소재솔루션센터를 이용해 성과를 내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 ‘아이컴포넌트’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필름코팅 기술을 가진 업체다. 휘어지는 액정인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유리와 달리 수분이 통과하기 쉬워 스마트폰 회로가 망가질 수 있다.

아이컴포넌트는 CMiB의 화학소재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험을 거듭해 수분 차단성이 우수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이컴포넌트는 이렇게 만든 필름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에 납품하고 있다.

○기업에 도움되는 정부 지원

첨단 화학소재는 대부분 일본과 독일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뒤떨어진 한국의 화학소재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센터장의 지론이다. 그는 “지금껏 정부의 지원은 대부분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실험에 국한돼 정작 기업들이 연구 결과를 사업에 활용하기 어려웠다”며 “화학소재솔루션센터는 수많은 연구소에서 쏟아져 나오는 성과를 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지원 부족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이 센터장은 “정부 지원이 금방 성과가 나오는 분야에 집중되다 보니 데이터베이스 구축처럼 장기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외면받기 쉽다”며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장기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도 기술 공유에 나서야

이 센터장은 기업에 개방형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화학솔루션센터와 협력 중인 기업들이 기술을 가져가려고만 하지 자기 기술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며 “새롭게 쌓이는 것이 없으면 가져갈 것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기술 특허를 완전 개방해 다른 기업들과 상생에 나선 테슬라모터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신념은 이 센터장의 경력에도 나타난다. 일반 연구원 시절, 그는 한 중소기업과 화학소재를 이용해 신발 밑창을 만드는 ‘발포사출’ 기술을 공동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고무 등 각종 화학소재를 눌러 찍는 기존 프레스 공법보다 원료 손실률을 50% 줄이고, 공정도 3분의 1로 단순화했다.

문제는 함께 사업하기로 한 기업이 부도가 난 것. 회사를 떠난 직원들은 발포사출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해 제각기 사업에 나섰다. 특허권을 이용해 법적 대응에 나설 수도 있었지만 정보의 공유가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신념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 신발산업의 경쟁력은 높아질 수 있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