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단풍의 이유 - 이원규 (19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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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시집 《옛 애인의 집》(솔) 中
며칠 전 설악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차피 두어 달만 있으면 앙상하게 뼈를 드러낼 나무들인데도 몸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차가운 비가 쏟아져도 서로를 안으며 끝없이 사랑을 불태울 것입니다. 이 가을 차가운 마음을 데울 뜨거운 사랑이 그립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시집 《옛 애인의 집》(솔) 中
며칠 전 설악산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차피 두어 달만 있으면 앙상하게 뼈를 드러낼 나무들인데도 몸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차가운 비가 쏟아져도 서로를 안으며 끝없이 사랑을 불태울 것입니다. 이 가을 차가운 마음을 데울 뜨거운 사랑이 그립습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